“씹히는 것이 이상해요!”

2011.02.07 09:21:32 제431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 (31)

필자가 20여 년 환자를 보면서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말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중에 최고는 단연코 “씹히는 것이 이상해요”이다. 씹히는 것을 환자가 이야기할 때는 너무도 다양하고 광범위한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간단하고 단순하게 해결하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용어로 교합이란 표현일 것이나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씹히는 것’은 의사들이 생각하는 학문적인 교합과는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의사의 교합 속에는 환자의 생각과 감정이 없으나 환자의 ‘씹히는 것’에는 생각과 감정이 들어 있다.

 

결국 환자의 교합에 대한 불만 속에는 원인적인 생각과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어떤 환자 한 분이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문득 얼굴이 비대칭인 것을 발견하였다. 본인은 예전의 사진을 꺼내놓고 과거와 현재의 얼굴을 비교하면서 그 원인을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 와중에 턱의 위치를 좌우로 움직여도 보고 이런저런 모습을 보다가 보니 턱이 약간 움직이면 얼굴이 맞아 보인다. 그리고 보니 이가 물리는 것이 좌우가 다르다.

 

계속해보니 하면 할수록 점점 물리는 느낌이 확실하게 좌우가 다르다. 언제부터인가를 생각해보니 얼마 전 아니면 혹은 오래전, 치과에서 치료받고부터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치과에 찾아가서 문제점을 토로했더니 치과의사가 강력하게 발뺌을 한다.

 

환자는 확실하게 의사가 과실로 발뺌한다고 생각하고, 이제 점점 더 얼굴이 틀어지는 것 같이 보인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충분히 현실성이 있고 필자도 여러 번 경험한 일이다. 이런 경우를 필자는 ‘할아버지 수염 현상’이라고 정의하였다.


우리나라 옛날이야기 중의 하나로,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질문하였다. “할아버지는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시나요, 아니면 밖으로 내고 주무시나요?” 이에 할아버지가 잠자려고 누워서 수염을 넣어보니 좀 이상하고 내어보니 그것도 이상하고 결국 밤새도록 수염을 넣었다 내었다 하다가 잠을 못 주무셨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보듯이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사항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것이 불신과 결합하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따라서 구환이든 신환이든 지간에 물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답변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고충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병이 들어서 입원해보거나 학교에 못가서 친구들이 꽃다발을 들고 병문안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다. 이는 남에게 뭔가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와 심리학적 용어로 ‘셀프 핸디캡’이라는 말로 본인에게 어떤 핑계거리를 마련하려는 심리현상이 복합된 경우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환자가 구강 내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증상이 ‘씹는 것이 이상함’이다. 물론 그것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치료비가 없는데 치료 예약일이 다가온다거나, 명절은 다가오는데 시댁엔 가고 싶지 않거나, 시험공부는 안 했는데 시험을 봐야 하거나 등등 수많은 사건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환자가 인식할 수도 있고 인식 못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환자가 인식하고 있을 때에는 해결이 빠를 수 있으나 환자도 인식 못하면서 이야기할 때는 참으로 힘든 마음고생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치과의사는 교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핸디캡을 지니고 있다.


그 시작은 해부학적인 형태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좌우측에 물림이 정확하게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치아를 배열하고 눈에 보이게 맞추는 일은 치과의사가 할 수 있지만 그 것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고 설명을 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도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을 넘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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