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토리엄 인간

2021.08.26 10:41:36 제933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30)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모라토리엄’이란 국가가 대외채무를 이행할 능력이 안 돼서 지불유예 하는 상황을 말한다. 한마디로 “지금은 줄 능력이 없으니 나중에 돈 생기면 줄게”이다. 이런 모라토리엄이란 용어를 심리학자 에릭슨은 청소년들이 시행착오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모라토리엄 인간’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청소년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잘못을 수용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고 사회적 책임을 질 나이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유예기간을 기대하거나 계속해서 청춘을 유지하려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면서 성숙을 외면한 어른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최근 교육환경이 독립심을 키워주지 못하는 데 있다. 부모 밑에서 편하게 놀고먹는 것이 가능하다 보니 스스로 독립해 고생하려는 의지가 사라졌다. 부모 또한 자식이 고생할 것을 원천 차단하다 보니 이런 성숙하지 못한 성인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부모다. 청소년들은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하는데 요즘 우리 부모들은 청소년들이 경험해야 하는 시행착오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스스로 경험을 통해 성숙할 기회를 박탈한다. 대학교 수강신청에서 병원 예약까지 해주는 엄마는 자신의 행동이 자식 스스로 성숙할 기회를 빼앗은 것인 줄을 모른다. 요즘 부동산이 급등하며 10~20대가 부모찬스로 아파트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뉴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식들이 감당해야 할 몫을 부모가 해결하면, 자식이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세월이 지나면 결국 그 자산을 지켜낼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을 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산이란 보유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능력도 그만큼 중요하다. 외국 재벌들이 자식들에게 유산을 빨리 물려주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의 모든 사회 환경이 모라토리엄 인간이 많이 배양될 수 있는 구조로 변했고 양산되기 쉬운 상황이다. 이들의 배출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사회에 부담으로 나타날 수 있다. 최근 급등한 가계부채가 1,800조를 넘었는데도 대출은 계속 증가하고, 부동산은 버블이라는 경고가 있음에도 오르고 있다. 이런 현상도 현실을 직면하고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한탕으로 끝내려는 도박성 투기인 ‘영끌’과 ‘빚투’를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악에는 부모에 기대려는 모라토리엄 인간이거나 도박형 아니면 ‘이생포(이번 생은 포기)’들이 많다.

 

이들 특성은 독립해 고생할 생각이 없다. 취직한 직장에서 힘들게 고생하며 버텨야 할 이유가 없으니 마음에 안 들고 수틀리면 바로 그만둔다. 먹고 사는 것은 부모가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는 자이면 취직과 이직을 반복하게 되고, 능력이 부족하면 영원한 취준생이나 캥거루족으로 산다. 굳이 험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사회로 나가서 온갖 잔소리를 참으며 월급을 받는 것보다는 쉬운 길인 대출을 받고 부모찬스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도 아이를 행복보다는 고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들에서 영아 학대가 증가하는 것은 육아가 어려운 것을 모르다가 힘든 현실을 직면하고는 원인 제공자인 영아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결국 다양한 원인과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미성숙한 성인들이 증가한 탓이다.

 

오랫동안 지속돼온 부모 과잉보호 세태나 결핍이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그리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모두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집값은 지금도 오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비정상은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조정을 받는 것이 이치이다. 그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주역들인 젊은 세대들이 내상이 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 모라토리엄 인간을 만든 것은 부모다. 아기가 서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인내를 해야 하는 것 또한 부모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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