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그리고 할머니

2021.12.10 11:44:47 재946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43)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크게 잘못되었다. 주말 드라마에서 일반 할머니가 도둑질한 돈으로 건물을 사고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하늘과 조상님께 감사하다고 대사하는 장면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이 땅의 할머니들은 마음의 고향이었고 양심의 상징이었고 어른의 대명사였다. 그런 보통 할머니를 일말의 죄책감도 못 느끼는 사기꾼같이 돈을 훔치고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 땅을 수호해온 정신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나라 모든 신화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양심이고 정의롭고 빗나가도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사악한 드라마가 도를 넘다 보니 이젠 우리 한민족 정신의 고향인 보통 할머니마저 파렴치한 도둑놈으로 묘사하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얼마 전 30대 미용실 사장이 가게 우편함에 전단지를 넣었다는 이유로 70대 할머니를 무릎을 꿇리고 사과를 강요한 일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담배 심부름을 안 한다고 꽃으로 때렸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개탄스럽다. 작가들은 반성해야 한다.

 

하늘은 우리 민족 피 속에 흐르는 두려움의 대상이며 정신적 고향이 돼왔다. 윤동주의 서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에서처럼 그런 하늘이다. 작가 스스로가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정신적 의미를 지닌 하늘과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그런 거지발싸개보다 못한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그들의 잘못된 묘사가 윤리와 도덕 불감증인 후손들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그 30대 눈에는 70대 노인은 보이지 않고, 돈 없는 약자로 갑질을 해도 될 만큼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런 짓을 했을 것이다. 우편함에서 전단지를 제거하는 것이 그토록 귀찮은 일인가. 보통은 다음부터는 자신의 우편함에 넣지 말아 달라고 말을 하면 된다.

 

30대가 70대 노인을 무릎을 꿇리는 것은 단순히 그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심한 문제점을 지녔음을 인식해야 하는 시점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지녀온 하늘에 대한 외경심과 할머니에 대한 정서적 감정이 생각 없는 천박한 작가나 30대 미용사에게 없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들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 그들에게 하늘은 그저 무의미한 자연일 것이지만, 살다 보면 어느 날인가 하늘의 실체를 아는 날이 오고, 그때는 후회할 것이다. 그것이 한민족의 하늘이다. 하늘은 그렇게 우리 민족의 원천적 신앙이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라고 했다.

 

부자나라가 아닌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가 존재하는 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결국 그들의 어려움을 폭넓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회가 돼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결코 70대 노인을 무릎을 꿇리고 할머니를 비하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경천애인(敬天愛人)하였다. 우리 역사 속에서 늘 하늘은 가까이서 모두의 행동과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대대로 내려온 하늘이 두려움을 못 느낄 정도로 무지하고 천박해졌다. 경천(敬天)하지 못하면 애인(愛人)할 수 없다. 하늘이 움직여 하늘을 알게 되면 그때는 늦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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