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그리고 품격

2022.02.17 13:15:05 제955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52)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경기를 보고 뭔가 편하지 않은 마음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억울한 편파판정을 받은 것에 대한 분노보다는 심판의 격 떨어지는 모습을 본 것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다. 억울한 일은 언제나 존재하는 인간사의 한 부분이고 문화가 떨어진 사회일수록 더 많이 발생하니 별로 그리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하지만 격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승패를 떠나서 마음이 불편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선수가 비겁한 반칙으로 우승을 하였다면 결코 그 승리가 기쁘기보다 계속 불편해지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보는 것이기에 씁쓸하다.

 

격(格)이란 한자에서 온 단어다.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모양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로 ‘바로 잡고 고쳐진 상태’의 뜻을 지닌다. 품격은 품성과 인격의 준말로 사물이나 사람의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품이나 품위를 의미한다.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말하고, 국격은 국가의 품위를 말한다. 격이란 물질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심판의 격 떨어진 판정은 그 심판들뿐만 아니라 소속 위원회 및 올림픽위원회와 주최국의 격마저 떨어트렸다. 그 이유는 격이 무형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형적 가치는 경제적으로 환산하여 손실이 발생하였을 때 빠르게 대치할 수 있지만, 무형적 가치 손실은 마음과 정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치가 손상당하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설마 주최국이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담당자들의 과도한 충성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라고 위안해본다.

 

격을 손상시키며 금메달이라는 유형의 가치를 획득하였을지는 모르지만, 그 경기를 지켜본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무형적 가치가 손상당했다. 당사자들은 인식하지 못할 것이지만, 주최국이 올림픽을 통해 얻고자 했던 유형적 무형적 가치를 한 번에 무너트린 사건이었다. 격이 떨어지며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부터 모든 경기를 관람하는데 편파판정이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생각으로 경기를 관람하는 집중력이 분산되고 흥미가 줄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해도 결과나 관심이 있을 뿐 실시간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깨끗함과 더러움을 아는 것이 본능적인 인식이듯이 부당함에 대한 인식 또한 본능적이다. 부당함이 눈으로 확인되면 마음속에 각인된다. 아마도 이번 편파판정을 막지 못한 주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을 전부 잃을 만큼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물론 그런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 중에 과도한 경쟁으로 반칙을 행하고 끝난 후에 사과하는 선수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격조가 있고 품격이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행복하듯이 아름다운 행동을 보면 감동받고 행복해진다. 더러운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듯이 더러운 행동을 보면 보는 이의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를 서양에서는 스포츠맨십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동양에서는 격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여러 나라가 편파판정에 반발하고 나서 주최국도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완전히 태도를 바꾼 모습을 보였지만, 경기를 관람한 개개인의 마음속에 각인된 것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

 

중국 고사성어에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 있다. ‘한 번 엎은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낚시꾼으로 유명한 강태공의 고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강태공은 나이가 칠십이 될 때까지 낚시만 하는 백수였다. 이에 견디다 못한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떠났다. 그 후 강태공이 제후가 되고 아내가 돌아와 같이 살 것을 요청하자, 물 한 바가지를 땅에 쏟고는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있으면 같이 살겠다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했다. 3000년 전 이야기이니 그 후손들이 완전히 잊을 만도 하다. 최근 대선 경쟁을 지켜보면서 TV토론을 보지 않았다. 대선 기간 내내 보아온 격 떨어진 기사와 내용들이 쇼트트랙에서 본 격 떨어진 판정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위에 걸맞는 품위와 품격 그리고 격조 있는 모습이 그리운 것은 필자만일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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