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나이

2022.04.14 11:26:44 제963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60)

외국 유학할 때 가장 혼선이 온 질문 중 하나가 나이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 외국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하는 반면 우리는 실생활에서 한국식 나이를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세 가지 나이를 사용해왔다. 우선 한국식 나이는 태어나면서 1살이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태중 10개월을 나이로 계산해준 것이다. 다음으로 만 나이는 출생일을 ‘0살’로 시작하여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계산한다. 또 하나는 학교나 병역 의무 등과 같은 행정과 관련된 업무를 위해서 사용되는 1월 1일을 기준으로 하는 연 나이가 있다.

 

이번 인수위에서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여 ‘K나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반가운 것은 필자 전공이 Growth & development다 보니 환자들 Age를 많이 사용한다. 환자와 대화에서 나이를 물어볼 때 두 번 묻지 않게 될 것은 반갑다. 교정과는 chronologic age보다는 bone age에 더 관심이 많아 한국식 나이를 사용할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성장기 환자에서 나이를 여러 번 물어보는 것이 종종 있었다.

 

필자는 예전부터 외국에 비해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해준 선조들의 생각이 담긴 한국식 나이에 정서적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변화는 약간 아쉬움도 남는다.

 

태아도 사람으로 인정하는 한국식 나이는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지녔다. 그중에서도 과거에 영유아가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이들에 대하여 더 강한 애착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처럼 의료가 발전해 영유아 사망률이 낮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종종 벌어지고 있는 영유아 유기 치상 혹은 아동학대 사건들도 영유아 사망률이 낮아지다 보니 상대적 소중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DPT 접종 하나로 끝나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생사를 한 번씩 넘어야 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특히 홍역은 역사극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듯이 영유아 생존에 치명적이었다. 100일과 돌상을 차리고 축하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은 백일상과 돌상에 생존에 관한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고 단순히 날짜개념으로 바뀐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희석된 것은 아쉽다.

 

수많은 전쟁을 경험한 우리 선조 부모들은 자식 목숨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반면 최근 부모들은 경제 상황이 나빠져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에 부모 없이 고생하면서 살아갈 어린 자식들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경우들이 있다. 과거 부모와 현재 부모 마음이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던 부모 마음에서 고생하고 살 바에는 같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내면에는 아마도 살아있는 것이 당연시되다 보니 생명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 원인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가난하고 아이들이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던 시절과 생존은 당연하고 넉넉하게 사는 것마저 얻어야 하는 지금의 차이가 부모들 마음을 다르게 만들었다.

 

이제 K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게 된다. 의료와 과학의 발달로 한국 나이의 비과학적인 계산법이 통용에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 선조들이 지녔던 생명에 대해 소중히 생각하던 정서가 담겨있는 한국 나이가 사라지는 것도 시대적 흐름이고 환경이 변했음을 의미한다. 필자가 굳이 보수적인 생각을 유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을 만나면 나이를 이야기하며 서로 정서가 다름을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사용되던 한 가지 주제가 사라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

 

선조들 행동 속에는 늘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100일을 살아서 고마워했고 돌을 넘겨주어서 아이와 하늘에 감사를 표했다. 지금 70세가 넘으신 분들 중에는 생일과 주민등록번호가 다른 분들이 많다. 당시에는 출생아 사망률이 높아서 몇 달 지켜보기 위해 출생신고를 늦추는 것이 상식 아닌 상식인 시절이었다. 생명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건만 가치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것이 아쉽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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