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15

2013.12.05 10:55:53 제570호

용담호반을 달리며

2013년 11월 11일, 고등학교 동문회가 전북 진안에 위치한 마이산으로 야유회를 간다고 한다. 버스관광에 30~40명이 지원했다. 70세를 바라보는 적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에 트래킹보다 차를 타고 둘러보는 코스다. 관광코스 중에 전라북도의 물그릇이라는 용담호수가 포함돼 있었다. 나는 처음 듣는 생소한 호수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언제나 그랬듯 호반 도로는 경치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업다운이 심해 어려운 라이딩 코스라는 것도 여러 호반 라이딩을 해왔던 나로서 하나의 프로토콜로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11월 초중순경이라 남쪽의 단풍도 절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조화가 언제나 일어나는 호반이기도 했기에 동문회 야유회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고, 자료를 수집하였다.

 

우리 동호회 대원 4명이 동문 야유회에 편승하였다. 밤새 자전거 프레임에 충격 방지 스티커를 붙이고 새벽같이 출발장소인 사당역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자전거 라이더는 될 수 있는 한 편리한 교통수단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새벽 4시, 컴컴한 한강변을 달려 이수 교차로에 올라선다. 응봉에서 10㎞ 전후의 거리다. 6시 출발인 버스를 고려해 여유 있게 출발하였다. 가로등이 절전 때문인지 하나 걸러 하나씩 불이 들어와 있다. 가로등이 켜있는 한강변. 그것도 꼭두새벽에 찬바람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마치 나 하나만을 위해 가로등이 밝혀져 있고, 다리도 놓여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섭씨 5도의 강변은 차가운 바람으로 나를 반긴다. 섭씨 5도는 라이딩 시 체감온도가 0도에 가까워 기능성 점퍼가 필수다.

 

사당동에 40분 만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우선 아침부터 해결해야 했다. 주변을 기웃거리니 포장마차에서 토스트와 따끈한 우유를 팔고 있었다. 자전거를 옆에 끼고, 아침을 해결한다. 깜깜한 새벽에 70세 가까운 할머니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침 주인 할머니가 진안분이셨는데 고향 자랑으로 침이 마를 틈이 없다. 진안의 표고버섯이 유명하다는 이야기와 금산보다 인삼을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70세 노인이 꽤 건강해 보여 어떻게 건강유지를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표고버섯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6시가 가까이 오자 우리 대원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모두가 동호회에 직책을 가진 7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선두·후미·촬영·총괄 등 4인이 새벽에 모여 버스 화물칸에 두 대씩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자전거를 싣고, 다른 동문과 동승해 마이산으로 출발한다. 우리 팀은 용담호수에서 하차해 43㎞를 달려 마이산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용담호수는 금강 상류의 장수군·진안군·무주군의 용수 공급과 홍수 방지를 위해 1990년 착공해 2001년 12월에야 준공되었다. 국내 다목적댐 중 소양, 대청, 충주, 안동에 이어 다섯 번째 규모로 높이 70m(해발 268.5m), 길이 498m, 총저수량 8억1,500만㎥, 유연면적 930㎢에 달한다. 전북권과 군산 국가산단에 연간 4억9,300만㎥의 용수공급과 1억3,700만㎥의 홍수조절 능력으로 금강 하류의 홍수 피해를 크게 줄였다고 한다. 큰 수위 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용담댐 발전소는 18만명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18억 9,800만㎾의 전력을 생산해 국가 전력 공급에 일조하고 있다.

 

또한 전북의 젖줄인 금강은 장수에서 발원하며 진안 무주를 거처 충북과 충남을 거쳐 군산으로 흘러나간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일찍부터 진안군 용담면에 호수가 생길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한다. 이는 용담댐이 완공된 후 물에 잠기는 호수의 형상이 용의 형상이 되고, 지역명과 맞아 떨어진다는 데 그 연유가 있었다고 한다.

 

용담호수에 대한 실체를 안 후, 내 머릿속에는 용담호반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며 그동안 달렸던 호수를 떠올렸다. 청평호, 충주호, 파로호 등은 아름다운 경관과는 달리 라이딩 시 고통을 동반하는 호반 도로가 있다.

 

버스는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달려 무주I.C를 빠져나온다. 30번 국도로 조금재 터널을 통과하고 장안리와 삼유리를 잇는 고개인 장삼재를 넘은 버스는 백화리 안천면에서 13번 도로로 북상해 우뚝 솟은 용담댐 공원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아침 8시 50분이다. 동문들이 우리를 몹시 부러워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20여개가 넘는 고개가 포함된 43㎞의 호반 도로를 3시간 이내에 주파해서 마이산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자전거를 타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동문들이 산책하는 틈을 타 우리는 먼저 출발한다. 신용담대교를 넘어 억새가 손짓하는 송풍 삼거리에서 795번 지방도를 타고 달린다. 뒤에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에 쳐다보니 버스 안에서 동문들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응원한다. 뜻밖의 고교 대표선수가 된 기분이다. 벌써 여러 개의 10%, 400~500m 고개를 넘었다. 보통 10% 고갯길은 입이 벌어지고 심장이 뛰는 유산소 운동의 한계점이다.

 

우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용담대교를 건너며, 지금까지 보지 못한 용담댐의 살아있는 몽환적 조화에 눈을 의심하였다. 물에 잠겨 섬이 되고 반도가 된 물굽이 사이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멋진 풍광은 경탄을 자아냈다. 물방울들이 표면에서 솟아올라 툭 터지듯 피어오르면, 물안개는 노도처럼 호수를 휩쓸고 산허리를 휘돌아 바다와 같은 소수를 해일인 양 스멀스멀 덮어 나간다.

 

하얀 안갯속에서 고깃배 한 척 나타나면 호수의 물안개는 쪽배를 휩싸고 감돌아 환희의 유희를 벌인다. 아침 햇살에 몇 겹으로 감싼 그 속살이 하나둘 벗겨지면 주황색으로 갈아입고 불타는 안개의 휩쓰는 힘에 호수는 또 하나의 운해로 덮였다.

 

태양의 속삭임에 사라지며 토해내는 안개의 묘술에 나는 얼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멀리 보이는 모정리 망향의 동산 팔각정에 올랐다. 단풍이 나를 감싸고 내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친구의 얼굴도 붉어져 모두가 붉은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멀리 보이는 호수는 바다인지, 떠 있는 산이 섬인지, 바닷속 섬들의 이야기가 들리고 있었다.

 

월평리를 지나 진안이 다가오자 저 멀리 두 귀 쫑긋! 마이산(馬耳山)이 부른다. 우리 대원들은 마이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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