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의료진-환자간의 관계도 능동-수동의 관계에서 지도적 협력관계를 거쳐 상호참여의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외국에서도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환자를 1900년대에는 ‘태만하다(defaulters)’라고 비난하였지만 1950년부터는 ‘믿음이 안 간다(faithless, untrustworthy)’는 정도의 표현으로 순화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순응도가 ‘떨어진다(non-compliance)’는 표현으로 바뀌었듯이 세계적인 추세인 것이다.
이는 진료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의료진과 환자간의 신뢰를 형성하여 심리적 지지를 통해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고 생활습관을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련의 과정까지도 포함함을 의미한다.
사실 전문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객관적인 진료를 하는 의료인에 비해 환자의 입장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스스로 자기의 몸 상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질병을 판단하는 근거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TV·인터넷·잡지 등에서 얻은 단편적인 지식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식의 대부분은 잘못되었거나 부적절한 지식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구강암일 때 구강내 궤양이 생길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단순 구내염 환자가 구강암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면 이는 잘못된 지식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환자는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건강의 손실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발생하게 되며 환자에 따라서는 이 분노를 투사(projection)할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되는데 이 경우 대부분은 의료인이 그 투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의료진이 사소한 말실수나 행동으로도 쉽게 환자가 상처받거나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하며 그 중 일부는 의사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처음 진료를 받는 환자가 특정 질환에 대한 걱정으로 방문하였다가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면 의료진을 향해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는 것을 대부분의 의사가 몇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의료진이 정상 결과가 나오는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는 환자 내면의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그 감정의 변화를 의료진을 향해 투사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치료 결과가 나쁠 때는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의료진을 향해 투사할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또 환자는 치료 과정을 통하여 마음의 평정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항상 감정의 기복이 크게 마련이므로 주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의료진과 환자의 입장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의료진의 조그만 부주의한 언행으로도 쉽게 환자의 분노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의료진들은 좋은 치료 성적을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 결과 세계 어떤 의료 선진국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높은 의료수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의료 지식만으로는 의료 소비자(환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의료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그 어느 직종보다 혹독하게 많은 업무량을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접은 고사하고 냉대만을 받고 있다면 그에 대한 억울함만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난받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대처해나가는 것이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맞는 길일 것이다.
진료란 단순한 진단과 치료 과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료진과 환자간의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진단에 필요한 병력을 청취하고, 그 진단에 따라 환자가 치료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으며, 적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하며 환자에 대한 심리적 지지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