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점심시간에 속보를 보고 생각이 멈추었다. 광주에서 치과 치료에 불만을 품은 40대 남성이 여자 치과의사를 흉기로 찔러 경찰에 붙잡혔다는 기사였다.
이 남성은 이날 예정된 치료를 받고 난 뒤 여선생이 다른 환자를 돌보는 동안 미리 준비해온 흉기로 찔렀다고 한다. 2009년부터 치과치료를 받아온 남성은 한달 전 보철치료 과정에서 발치를 한 뒤로 극심한 통증을 느껴 수차례 항의했다고 한다. 남성은 경찰조사에서 “여선생이 뽑아도 되지 않을 치아를 건드려 통증이 심해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자신의 항의에 “무성의하게 답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가 이용하는 치과인데 평소에 치료를 성의 없게 해준다, 치료를 잘못해 놓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한다”라고 답변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같은 동료로서 참담한 마음이다. 조속히 피해 선생님이 쾌차하시기를 바라지만 피해 선생님이 극복해야 할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더욱 걱정이다. 더불어 이 사건을 보는 필자는 몇 가지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우연히 발생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어디선가 누구에게나 발생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의 사건이 이미 사회에 팽배해져 있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이 살인으로 발전한지 오래다. 층간소음은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원인이 ‘벗어날 수 없는 지속적인 분쟁의 존속’에 있다. 다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답변은 한결같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무시당하고’로 대변된다.
이런 면에서 치과치료도 층간소음과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첫째로 환자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속적인 분쟁이 존속된다. 둘째는 더 이상 참을 수없는 한계에 도달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치과의사와의 대화 속에서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층간소음으로 분노가 폭발하여 행동으로 발전하는 것이나 치과분쟁에서 환자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나 유사한 맥락을 지니게 된다.
이번 사건을 다룬 뉴스를 분석해 보면 남성 환자는 2009년부터 치과를 다녔고, 근래에 안 빼도 될 치아를 발치당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그에 대한 여의사의 성의 없는 태도에 화가 나서 범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마디로 환자의 지속된 불만이 감정으로 표출된 것이다. 거기에 요즘 사회적인 병폐인 분노조절장애가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처음 병원을 갈 때부터 흉기를 지니고 갔다는 것은 이미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으로 폭발 수위까지 갔다고 본다. 그리고 환자는 진료를 받았고 자신의 치료가 끝나고 다른 환자에게 이동한 여의사를 뒤에서 공격하였다. 이것은 본인이 감정적으로 듣고 싶었던 “미안하다”는 표현을 못 들은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생각된다.
요즘 환자들의 생각이나 요구가 황당하고 논리적이지 않을 경우가 많다. 이런 때, 몇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우선 환자 말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려 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긍정을 해주어야 한다(답변: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일반적이지 않아서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두 번째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환자가 받는 고통을 동의해주어야 한다(답변: 어쨌든 저희 병원을 다니면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마음 아프고 죄송스럽습니다).
셋째로 전문인으로서 환자가 받은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데 도와주겠다고 하여야 한다(답변: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지요? 어떻게든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답변은 환자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게 하고 분쟁 환자와 대화의 물꼬를 만들 수도 있다. 치과 외래에서 만나야할 불특정 환자의 심리적인 상황을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발치할 때 치근이 부러지는 것을 조심하듯이 분노조절장애 환자를 만날 가능성에 대해 조심하여야 한다. 치근파절, 파일파절과 같다. 확률일 수도 있고 예견될 수도 있다. 이젠 환자의 심리에 대하여도 스스로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