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간단히 정의하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에서는 특히 마음의 반응을 중요시 여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아프리카 어느 원주민으로부터 엄청난 욕을 들었다고 가정했을 때 원주민 말을 모르는 우리 마음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어 통역을 들었다면 심히 불쾌하든지 아니면 매우 화가 날 것이다. 결국 마음에서 화가 나는 것은 욕이라는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과거의 경험이 매개반응을 하는 것이다. 단지 주어지는 조건에 대하여 과거에 축척된 경험이 반응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따라서 의지와 무관하다.
기억을 하면 의식이고 기억하지 못하면 무의식이다. 출생에서 현재에 이르는 모든 경험의 축적이 시간에 따른 망각과 합쳐지면 무의식이 된다. 예를 들어 과거를 생각해 보자. 가장 어렸을 때 기억의 시작은 어디이며 그 장면이 몇 개나 될까? 아마도 초등학교 이전 기억이며 대부분 잘해야 한두 가지 기억이다. 그 후 초등학교시절의 기억은 그것보다는 많지만 수십 가지는 안 된다. 중학교 시절의 기억도 초등학교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대학시절은 중학교 이전보다는 더 많은 기억들이 존재한다. 기억이 나는 순간들은 충격적이었거나 행복했거나 아니면 논리적으로 이해되었던 순간들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때이다. 이 시기는 심리적 프레임이 완성되고 강화되는 때이고 성격이 형성된 시점이다.
반면 이 이전의 잘 기억나지 않는 시기가 바로 무의식이 형성되어온 기간이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호감과 비호감 혹은 무관심을 느낀다. 좋아하는 색이 있고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것이 있는가하면 좋은지 싫은지 모르는 애매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일반적으로 마음의 작용이라고 말한다. 비록 기억하지 못한다하여도 좋아하는 색이 생기기까지에는 어려서의 어떤 경험이 작용하고 있다고 심리학은 설명한다.
현대 심리학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부터 태동되었다. 그가 꿈의 해석을 발표한 것이 1900년이니 이제 100년이 조금 넘었다. 서양에서 인간의 마음이 현대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불과 100년이지만 동양에서는 이미 2~3000년 전부터 이야기되었다. 석가, 노자, 공자 등 성인들이다. 그중 마음을 가장 구체화시킨 이는 석가모니이다. 그는 지금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을 넘어 오로지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2500년 전에 주장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 된다(一切唯心造)”고 하여 자신의 마음을 알라고 하였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 방법을 법(佛法:부처가 말한 방법)이라 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 하였다. 그는 신도 아니었고 스스로 신이라 한 적도 없고 종교를 만든 적도 없고 신을 이야기한 적도 없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안 사람이라고 하였고 그렇게 하는 방법을 단지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현대식으로 설명하면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심리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석가모니가 늙고 병들었을 때, 부처가 돌아가시면 누구를 믿고 의지하여야 하냐는 어떤 제자의 질문에 그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 자신 스스로의 마음에 있는 양심을 따르며 가르쳐준 마음을 아는 방법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하였다. 그는 현대 심리학이 이야기하는 무의식을 넘어 마음의 본질을 이야기하였다. 마음의 본질을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나, 진아(眞我), 우주아(宇宙我), 본성(本性), 불성(佛性)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결국 의미하는 바는 비슷하다.
인류가 마음을 이야기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아프고 불편한 것을 극복하려고 마음을 이해하려 하였다. 마음의 이해는 자신이 과거에 마음속에 무엇을 넣어 두었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의 반응을 알 수 있고 그 때야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