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수리하는 서비스 기사들이 고객 몰래 휴대전화의 설정을 바꿔서 본사의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받지 못하게 하는 사례가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이유는 고객이 서비스 만족도 평가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다는 것인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수리기사들은 서비스 만족도가 만점에서 단 1점만 깎여도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불이익이라는 것이 보통 200만원 안팎인 월급이 최대 50만원까지 깎이기도 하고 고용 자체가 불안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수리기사들이 잘못된 방법을 쓴 것이고 기업에서 고객만족도를 조사해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업경영의 방법이므로 기업에서 고객평가를 한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평원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환자경험평가 설문내용을 보면 “담당 의사(간호사)는 귀하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대하였습니까?”, “담당 의사(간호사)는 귀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었습니까?” 등의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환자의 경험으로 공평한 대우를 받았는지, 치료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지에 대한 문항도 있다. 이런 문항이 객관성을 근거로 평가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든다. 원칙적으로는 환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서 대해야 한다. 환자에게 공평한 대우를 해야 하는 것은 맞는 것이다. 그런데 평가에서는 매우 주관적이며, 다른 일과 연결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평가를 낮게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비자만족도도 전체적으로 이를 판단하는 설문이지만 모든 항목에 만점을 받지 못하면 불이익을 주기에 저런 기사가 나온 것일 것이다.
오는 6월부터는 환자에 대한 설명, 동의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한 의료법이 시행된다.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 시 환자에게 의료내용을 설명하고 서면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미 민사적으로 의료인은 설명의 의무에 대해서 배상적 책임을 지우고 있는데 이제는 법적으로도 관련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임상에서 충분히 설명을 하였다고 생각하나, 환자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추후 문제가 생기면 그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설명의 의무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 중에 하나가 환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라는 것이다. 치의학이라는 어려운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환자를 이해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해의 수준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서 임상의들은 난감하다. 더욱이 설명을 하고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 설득의 의무까지 부과되는 경우에는 어려움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자기주장을 하면서 주치의와 다른 치료방법을 고집하는 경우 악결과가 나타난 것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도 어려운 문제이다.
심지어 예전에 환자에게 설명을 길게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환자가 자기 할 말을 다하지 못했다고 주치의가 성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병력청취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진단학에서도 주제를 벗어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시 환자의 질환과 관련된 내용으로 화제를 전환해야 한다. 설명의 의무가 법제화되는 것이 무조건 의사가 환자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궁금해 하는 점을 답변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치료를 제대로 했느냐, 못했느냐보다 설명을 제대로 했느냐, 못했느냐가 중요한 상황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징벌적 제도로 운용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