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대왕암을 다녀왔다. 울산여자치과의사회 강연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호우주의보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대왕암의 첫 모습은 평범하였다. 너무도 평범한 모습은 기도드리는 사람들의 징소리조차 무색하게 하였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대왕암을 검색하면서 대왕암의 평범함은 새롭게 다가왔다.
대왕암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유골을 뿌린 곳이라는 이야기와 수중릉이라는 이야기다. 삼국사기에는 산골처(유골이 뿌려진 곳)로 되어 있다. 3국을 통합한 문무대왕은 자신의 화려한 능묘를 만드는 일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수고를 할지를 알고 그는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화장할 것을 원하여 산골한 곳이 대왕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통일을 완성한 위대한 왕의 업적보다는 죽어서도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 고생하는 백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인 진정으로 위대한 왕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수중릉에 대한 것은 도굴을 막기 위하여 삼국사기에 화장하여 산골한 것처럼 기록한 것이지 실제로는 무덤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산골처에 더 믿음이 간다. 대왕암에서 평범함과 고즈넉함이 수 천 년 넘어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속에 위대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것은 그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한다.
반면 대조적으로 대왕암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절인 감은사 절터에는 3층 석탑 2개만 남아있다.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문무왕의 마음이었다는 확신을 준다. 감은사가 완성된 다음 해에 바다의 용인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둘이서 대나무를 합쳐서 만든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주었다. 국가의 만 가지 풍파를 없애주는 피리이다. 아마도 문무왕과 김유신이 없는 상태에서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민심통합 작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우민을 이용한 민심 수습책이었다.
더불어 만파식적이 없는 요즘 정치인들이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해 본다. 만파식적이 없는 이들이 선심성 공약과 이행을 만파식적으로 착각할 수 있다. 지금 정부가 믿는 소득주도형 경제성장이 웃돌 빼서 밑돌 고이기라면 만파식적이 아닌 만파식 적(萬波式 敵)이 될 수도 있다. 위대한 정치는 만파식적이 아니고 백성의 수고함을 없애기 위하여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못하게 한 문무왕의 마음이란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그런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대왕암은 정치적 목적으로 수중릉이 있는 것처럼 바뀐 듯하다. 정치적으로 백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암석보다는 통일완성에 걸맞는 위대한 표상이 필요했던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수중릉이 설득력을 지닌다. 진정 백성을 위한 마음이 간직된 대왕암의 평범한 모습이 마음속에 남는다. 만파식적을 구하려고 무엇이든 다하는 요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볼수록 문무왕의 위대한 마음이 더욱 필자의 마음에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음이 없다면 어떤 만파식적도 세월이 지나면 모두 사라진다. 감은사처럼 흔적만 남아도 다행이다.
처음 울산을 방문하고 필자가 교과서로 배워서 아는 지식과 생각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확인하였다. 공업과 자동차의 도시로만 생각하던 울산의 진정한 모습은 몇 천 년을 이어온 신라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서 움직이는 역동의 장소였다. 물론 근현대화의 물결에 수없이 변하였겠지만 만파가 그러하듯이 만파도 바다의 모습이다. 과거와 다른 현재의 모습을 다름이 아닌 다양성으로 본다면 포용과 융합이 가능하고 그것이 바다이다. 만파는 늘 있다. 만파식적을 없애는 방법은 만파를 바다로 인식하는 것이다.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만파식적을 없애는 방법이고 만파식적이다. 그 마음이 없는 이들이 만파식적을 찾는다. 만파식적은 방법이 아니고 마음이다. 대왕암을 다시 본다면 필자에게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번 울산 방문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