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덕담으로 시작하여야 하건만 그리 녹록지 않다. 서울 모대학병원 정신과의사의 사망사건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상담 진료하던 환자로부터 공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건의 내용을 보면 1년 전에 진료를 받았던 환자가 예약 없이 내원하였으며 진료 시간 이후에 온 마지막 환자였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환자는 이미 살해할 의도를 지니고 내원했다고 한다. 고의적으로 의도해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불어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의료인들은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어제는 25세 남성 초진 환자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다. 종이에 질문을 깨알같이 적어왔다. 잇몸이 나쁜데 자신의 치아가 언제쯤 빠질까? 등등 환자의 질문에 1/3은 답변하지 못하고‘예측 불가합니다’, ‘신의 영역으로 현대의학으로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등으로 답변하는 필자에게 환자는 짜증을 내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에 필자는 ‘미안합니다. 치아교정으로 치근이 짧아진다는 것은 알지만 개개인에서 얼마나 어떻게 짧아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대 의학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고 그 환자는 질문마다 모른다고 답하는 필자를 책임회피나 하는 나쁜 의사 정도로 취급하고는 돌아갔다.
필자의 의도와 달리 환자는 강한 불만을 지녔다. 과연 누가 이 환자와 상담해 불만 없이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치과의사의 답변으로 그 환자가 불만 없이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란 결론에 도달하며 정신과의사 사망사건이 떠올랐다. 이미 환자는 내원하기 전에 수많은 자신만의 답을 정하고 왔고 자신의 답과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결과는 이미 정해진 상황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럼 정해진 방향과 다른 결과를 내는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 질문에 답을 하여서는 타임트랩처럼 몇 번을 하여도 같은 결과가 초래된다. 해결점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과연 환자가 그런 질문들을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유를 알면 환자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아직도 필자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가 사고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를 생각하니 몇 가지 주목할 것이 보였다. 평소와 다른 것들이다.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대학병원에서 예약 없이 온 환자를 경솔하게 다루지 않았나하는 부분이 있다. 다음은 진료시간이 지난 후에도 진료를 행한 것이고, 셋째는 마지막 환자였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사항의 공통점은 의료진이나 병원 시스템이 가장 느슨해지는 시점인 때라는 것이다. 예약제 우선으로 돌아가니 예약하지 않은 환자는 마냥 기다리면서 불만이 최고조로 다다를 수 있다. 진료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병원 시스템이 멈춰진 시점이고 다른 스텝들도 이미 자기 자리에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세 번째로 마지막 환자였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예약하지 않아서 밀렸을 가능성과 처음부터 끝날 시간에 맞춰 내원했을 가능성이다. 전자였다면 환자가 화가 날 여건들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후자였다면 애초에 작정을 하고 왔을 가능성이 높다. 내용이 어떤 것이든 필자가 늘 강조하듯이 마지막 환자를 경각심을 가지고 조심했다면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의료인들은 하루 진료가 끝날 때, 마지막 환자를 진료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하루의 피로가 가장 심하여 집중력이 최악으로 떨어질 때이다. 또 진료 이후에 약속이나 일정이 있을 경우에 생각이 분산되고 본의 아니게 무의식적으로 진료를 서두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마지막 환자의 진료에는 집중력을 요하는 환자는 예약을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일부러 항상 마지막 시간에 내원하는 환자들도 있다.
결국 우리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경각심을 갖고 조심하는 시작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평소와 다른 그 무엇인가가 발생했을 때이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징조라고 한다. 의료에서는 전구증상이라는 표현을 한다. 무엇인가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소와 다른 징조가 나타난다. 징조를 조기에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경험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의 느낌을 믿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느낌은 본능적으로 먼저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