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산층이 사라진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를 보며 치과의사는 중산층일까 고소득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수능 만점자가 치대를 선택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등 치과대학이 인기가 있었다. 치대를 졸업하면 의대보다 일찍 개원을 할 수 있고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치대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약간 씁쓸하기도 했지만 치과의사의 위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에 흐뭇한 면이 없지 않았다. 최근에 치과 개원가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치대 지원율도 떨어지고 입시사정 점수도 하락하고 있다. 이제는 심심찮게 치과의사가 중산층인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의 중산층에 대한 인식을 좀 알아보자(이 자료는 20대에서 60대 사이의 5,037명의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결과이다). 1989년 갤럽조사에서는 국민의 75%가 “나는 중산층이오”라고 했다(체감중산층). 서울올림픽으로 대표되는 고도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이 계층 상승에 대한 낙관을 불렀다. 그후 체감중산층은 2003년 56.2%, 2013년 51.4%, 2019년에는 48%로 뚝 떨어졌다.
중산층에 대한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OECD에서 제시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중위소득(국민이 100명이라면 소득 순으로 세웠을 때 50번째 사람의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중위소득 금액의 50% 미만은 빈곤층, 50~150%는 중산층, 150% 이상은 고소득층으로 본다. 2019년 중위소득은 4인가구 기준으로 월 460만원이다. 따라서 월소득이 230만원에서 690만원까지가 중산층에 속한다. 실제 우리나라 중산층은 약 57% 정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중산층의 기준을 높게 잡고 있다. 이는 대중이 중산층을 바라보는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종의 ‘강남 증후군’이다. 너나없이 가난하고 평등하게 출발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는 고도성장을 경험하며 중산층에 올라탔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사회가 되면서 문이 닫혀버렸다. 계층 상승에 대한 희망이 꺾였다. 그래도 강남은 여전히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남 수준이 안 되면 ‘난 중산층이 아니야’라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맞벌이를 하고 아이가 하나 있지만 “소처럼 일해도 나는 중산층은 못 되고 그냥 서민인 것 같다”고 푸념한다. 방송은 여행과 먹방, 연예인의 일상을 다루고 소셜미디어는 ‘포장된 삶’을 보여준다. 돈이나 물질적 성공 스토리가 없는 삶은 실패한 것처럼 비친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기 쉬워진 만큼 자꾸만 내 삶과 견주어 평가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됐지만 중산층의 귀속감은 사라지고 부자와 서민으로 양분되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치과계에도 잘되는 치과, 안되는 치과로 이분되는 것 같다. “치과의사로서 양심을 가지고 진료해 왔는데 과잉진료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동료를 보면 내가 잘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오랜 동료 치과의사의 푸념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은 월 500만원 이상의 소득, 2000CC 이상 중형차, 30평 이상 아파트, 현금 1억, 연 1회 이상 해외여행을 갔다 올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이보다는 구미 선진국의 중산층 기준과 같은, 페어플레이를 하고,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며 불의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고, 직접 하는 스포츠가 있고, 남들과 다른 요리 레시피를 갖고 있을 것 등 물질적인 것보다는 사회 문화적인 중산층 개념으로 옮겨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조선시대 중산층의 기준인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이 있고, 겨울 여름 옷 두어 벌,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햇볕 쬘 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하나,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하고 사는 것’과 같은 것도 좋을 것 같다.
‘욕망은 죽기 전에는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