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청년의 74%가 우리 사회는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대 청년 1,000명(남녀 각 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사회·행복, 연애·결혼, 자녀·가족에 대해 질문했고, 그중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의 유효성에 대한 질문에 74.0%가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비관적으로 답했다. 게다가 74.2%는 실제로 불공정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으며, 그 이유는 윗세대의 부조리함, 경제력, 성별 등 순이었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간 법무장관 사태가 단적으로 대변하는 듯한 답변이라서 씁쓸하다.
‘연애·결혼’ 부분에서 결혼에 대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편’ 39.3%, ‘절대 하지 않을 것’ 8.0%, ‘꼭 할 것’ 18.7%, ‘하고 싶은 편’ 34.0%로 긍정 52.7%에 부정 47.3%로, 절반 정도가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꼭 결혼하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남자 26.4%, 여자 11.0%로 여성이 더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결혼을 꺼리는 이유로 남자는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므로’, 여자는 ‘양성 불평등 문화가 싫어서’였다.
출산에 대해서 ‘꼭 낳을 것’ 12.3%, ‘낳고 싶은 편’ 30.8%, ‘낳고 싶지 않은 편’ 41.5%, ‘절대 낳지 않을 것’ 15.4% 등이었다. 56.9%가 출산에 부정적이었다. 그 이유로는 ‘이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에 좋지 않아서’가 36.4%,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24.1%)’가 있었다. 사회가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어려운 환경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자녀’에 생각나는 키워드로는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 사랑, 기쁨·행복, 돈·경제력, 양육, 나의 일부, 가족, 희생이고, ‘결혼’에 생각나는 키워드로는 가족·가정, 자녀, 사랑, 돈·자금, 행복, 주택마련, 책임감, 안정감, 얽매임 등이었다. 행복 부분에서는 ‘경제력, 가족, 취미생활’ 순이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돈도 없으면서 무책임하게 왜 나를 낳았냐고 엄마에게 문자 보낸 아들의 SNS 글이 연상됐다. 글에서 자신은 순간적인 엄마의 욕망에 의한 희생자라고 표현하며 엄마가 돈도 없이 가난하면서 자신을 낳은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고, 그로 인해 자신은 헤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끝없는 불행을 겪고 있는 피해자라고 말했다. 필자가 아는 도덕과 윤리를 기준으로 하면 말도 안 되는 패륜적인 글이지만 위의 설문조사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청년들의 첫 번째 아픔이 ‘왜 우리 부모는 빌딩이 없는가’이다. 두 번째는 ‘왜 우리 부모는 법무장관이 아닌가’이다. 세 번째는 ‘왜 나는 원빈이나 송혜교처럼 생기지 않았나’이다. 얼마 전 여중생 환자에게 남자친구의 조건에 대해 물어보고 답변에 놀란 적이 있었다. 자신은 남자가 공부 못하는 것은 용납해도 키가 작은 것은 안 된다고 했다. 얼마 전 상안면이 조금 긴 환자가 부모님과 내원했다. 그리 심한 편이 아니어서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본인은 개선의 의지가 강했다. 부모님은 그런 자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필자는 부모님에게 “지금 자식들이 사는 사회가 그만큼 녹록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90년 전 러셀은 ‘행복의 조건’에서 문명사회로 가면 청년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출산하지 않을 것을 예견했다. 필자가 청년 시절에는 집집마다 차가 없었다. 분명 지금 청년들이 잘살고 있다. 우리 세대가 단칸방이라도 둘이 있으면 좋다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회가 공정하지는 않지만 노력하면 결과가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부모세대로서 자식들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고, 노력은 출신 성분을 극복할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하기 때문에 아무런 조언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前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타계했다. 지금 청년들은 모르겠지만 노력하면 결과가 있다는 말을 이룬 사람으로 개인성공 신화의 우상이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친 고인의 용기가 부럽다. 그의 글을 읽은 후배로서 삼가 조의를 표한다. 그의 떠남이 노력을 믿지 못하는 현실과 오버랩되어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