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으로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비유하기도 하고, 촛불이 꺼지기 전에 한 번 밝게 타오르고 꺼지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참선 수행 중에 밖으로 향한 마음을 내면으로 돌이켜서 다시 돌아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됐다는 뉴스와 함께 다시 기승을 부린다. 우리나라도 이번 주에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는 단계에 들어왔다. 최근 이런저런 뉴스를 듣다가 문득 회광반조란 단어가 떠올랐다. 새벽이 오기 직전 밤이 가장 어둡고, 촛불은 꺼지기 직전 가장 밝다. 모두가 앞만 보고 있을 때 뒤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시험은 내가 잘 보는 것보다 남이 못 보았을 때가 더 중요함을 아는 것이 회광반조이다. 정말 옳다고 판단했을 때가 멈추고 되돌아볼 때다.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낄 때 뒤로 돌면 된다는 뜻이다.
2020(경자)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보이는 사건들이 회광반조 같다. 지난 경자년을 뒤돌아보니 ‘마스크와 코로나’로 두 단어만 기억이 남는다. 지구 모든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 위협 속에서 한 해를 지냈다. 지금 상황이 나쁜 것은 바이러스로부터 인류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고, 다행한 것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사율이 높은 것이 문제이지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생기고 지구 생명이 5번 멸종이 있었다고 말한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인류가 겪은 마지막 인류 멸종의 위협은 7만년 전 슈퍼화산인 인도네시아 토바화산 폭발이었다. 슈퍼화산 폭발은 핵전쟁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때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두꺼운 먼지와 대량의 화산재가 장기간 햇빛을 가리게 된다. 이로 인해 지구 전체 기온은 크게 낮아지며 겨울(화산겨울)이 지속되고, 식물이 멸종하고 그에 따라 다른 생물들도 멸종하게 된다. 2009년 미국 럿거스대학 연구진은 토바화산 폭발로 지구 평균 기온이 7도가량 낮아졌으며 인류는 대부분 생존에 위협을 받았고, 수천명만이 살아남아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인류를 포함한 지구 위에 살고있는 모든 생명은 늘 크고 작은 생존의 위협을 받아왔다. 지구 종말을 그린 영화에서 등장하는 소행성 충돌이나 얼마 전 상영된 백두산 폭발 영화처럼 인간의 과학적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인류 생존을 결정하는 커다란 위협이 있다. 또 이번 코로나와 같은 멸종은 아니지만 개체수를 감소시키는 작은 위협도 있다. 위협에 노출될 때마다 인류는 늘 새로운 생존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번 코로나 위협도 이제 거의 끝자락에 도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12월 21일이 동지이다. 동지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 하지만 동지가 지나면 낮이 점점 길어진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이때부터 낮이 길어지는 희망이 시작된다. 1년 중 회광반조의 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가 태양에 가장 가까운 날인 것도 회광반조이다. 동지가 지나면 희망이 생긴다. 동지까지가 밤이 길어지고 깊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도 새벽 여명에 사라지는 것이 이치이다. 동지가 지나면 새해이다. 새해 신축년(辛丑年)은 동양철학적으로 신(辛)이라는 노력의 결과물이 나오는 황소 해이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농부들이 수확을 하는 결과의 해이다. 경자년을 잘 견뎌낸 결과를 얻는 해이다. 어둠의 마지막 자락에서 희망이 생겨나는 회광반조를 생각해 본다.
2020년을 마무리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힘내라는 말보다 폭풍우를 만난 돛단배처럼 물결의 흐름에 맡기는 지혜를 권한다. 불가항력인 상황은 힘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맡기며 견디는 것이 순리이며 회광반조의 지혜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 인류는 그렇게 지혜롭게 생존해왔다. 사람 마음도 이와 유사하다. 멀어지면 그리움이 커지고 가까워지면 불만이 커진다. 이때 회광반조를 하면 불만이 고마움이나 감사함으로 바뀐다. 회광반조가 지금의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