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한 번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어느 술집에서 술을 어느 이상 마시면 점심식사를 공짜로 제공했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점심이 공짜라니 이렇게 좋은 조건이 어디 있나 싶지만, 잘 따져보면 점심값이 술의 가격에 반영돼 있어서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술을 마시면 상당한 술값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엇을 얻고자 할 때는 그만한 대가가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은 경제의 기본 원리라 할 수 있다.
아주 싼 진료비를 내세워 열심히 광고하는 병원들이 많다. 이렇게 싸게 진료비를 받아서 어떻게 병원을 운영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인데,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적 원칙을 고려해보면 이렇게 싼 진료비가 가능한 것은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싸게 받는 대신 불필요한 진료를 많이 해서(과잉진료) 이윤을 남기거나, 진료비 선납을 모아서 먹튀를 하거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이들 의료기관도 운영비가 필요하고 급여도 줘야 하며,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싼 게 아니고 아예 공짜로 치료해준다는 소위 ‘무상의료’나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병원’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환자들 입장에서 너무 좋아 보이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진료가 공급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환자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무상’의료란 존재할 수 없는 단어다. 좀 더 의미를 명확히 표현하는 용어는 아마도 ‘세금의료’일 것이다. 공공병원은 어떨까? 환자 수요가 충분히 많지 않은 곳에도 신경외과, 산부인과같은 적자가 날 것이 뻔한 과목의 전문의들을 배치하고 소외계층이나 오지에 필요한 진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공공병원을 짓는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려해야 할 것은, 이런 병원을 만드는 데도 돈이 들고,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이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의료보험수가와 공공병원의 진료환경을 고려할 때 진료만으로는 적자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구매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얻게 되는 유익을 비교해본다. 옷을 살 때도, 케이크를 살 때도 지불해야 할 비용 대비 유익이 큰지 생각해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내 주머니에서 바로 돈이 나가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용 대비 효과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무상의료니 공공병원, 혹은 탄소중립을 외칠 때, 이것이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이고 당신이 얼마나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점을 전혀 설명하지 않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들의 사탕발림을 들으면서 ‘그러니까 우리보고 돈을 더 내라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다.
‘나는 안 내고 다른 사람들만 더 내도록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있는 듯하다. 국민연금이 2043년부터 적자가 되고 2056년이 되면 고갈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국민연금 출범 당시 반대의견을 설득하고자, 내는 것보다 더 받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연금이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이 됐다. 결국 우리세대의 연금을 우리 자녀들에게 짐으로 지우는 상황인데 계속 방치하고 있다. 부담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행태는 합리적인 것일까?
그럴 듯한 비전을 말하며 필요한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말을 기억해 달라.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러시아 속담).’
*논단은 논설위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