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병원에서 건강보험증을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소위 ‘신분증법’ 개정안에 대해서 의료계는 건강보험 자격확인 업무와 책임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고, 본인확인 절차로 인해서 행정업무 지연으로 환자에게 불편이 돌아가며, 행정업무 과중으로 인한 인력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한 적이 있다.
또한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노약자·어린이·장애인들에 대해서 진료가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으며,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 의료법과도 상충된다는 지적도 하였다. 개정안의 목적이 건강보험증의 무단사용에 대한 대책이라면 정부와 공단이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도록 계도하거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원칙적으로 환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데 전 세계 할인항공권 검색 비교사이트에서 조사해 보니 항공기를 놓쳐본 경험을 여행객의 20%정도에서 경험하는데 그 중에서 7%정도가 여권을 가져오지 않아서 비행기를 못 탔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러가면서 여권을 챙기는 것은 필수적이고 누구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함에도 많은 수에서 여권을 미지참하는 경우가 생긴다. 병원에 올 때는 누구나 신분증을 가져와서 본인을 확인해 달라고 하면 얼마나 시행이 잘 될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올해 7월부터는 부정수급방지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자격조회를 해서 무자격자 및 급여제한자는 진료비를 청구해도 주지 않는 벌을 주겠다고 한다. 공단에서 공문을 하나 보내 친절하게 협조를 구한다는 협박도 하였고, 언론에서는 병원에서 돈 벌려고 무자격자들의 자격확인을 하지 않아서 재정이 누수 된다는 뉘앙스도 풍기고 있다. 더구나 병원행정력은 증가하지만 병원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단의 업무를 의료기관에 떠넘겼다는 불만에 대해서 건강보험법(제12조)에 환자의 신분확인이 의무사항이므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공단의 업무를 병원에 전가시켰다는 것이다. 재정누수를 막기 위해서 사전관리 카드를 꺼내들기 전에 어떻게 하면 체납자로부터 건보료를 회수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응급의료비 대불제도 회수금액이 5% 수준이라고 것도 눈먼 돈이 되어있는 것인지, 회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드는데 그 업무를 병원에서 하라는 것에 대해서 업무를 떠넘긴다는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접수에서 자격문제가 확인이 되면 환자가 본인부담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를 환자가 현장에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불만을 병원에 직접 토로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국민건강보험시대라는 주장으로 보험 적용을 강력하게 주장하면 의료인의 가장 큰 의무인 진료를 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비용문제로 분쟁이 생겨서 진료를 안 해주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병원의 본분은 환자의 진료에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이 건보료를 체납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병원이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복지부나 공단의 역할이지, 이런 식의 일방통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솝우화에 보면 바람과 태양이 누가 더 힘이 센지 자랑을 하다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하느냐로 시합을 한다. 공단은 최근 강한 바람을 병원에 불면서 니들이 다 확인하고 안 하면 혼내준다고 한다. 편안하게 진료할 수 있게 햇볕을 비추면서 온 국민이 건강해지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은 왜 안 해보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