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갈령치

-0001.11.30 00:00:00 제601호

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28

동해안을 달리는 7번국도 옛길은 우리나라에서 역사와 문화가 점철된 그리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최고의 라이딩 코스다. 그 중에서도 강릉에서 울진 구간은 특히 경관이 빼어나고, 재와 고개가 수없이 이어지는 극한의 코스다.

 

항상 그렇듯 고개는 고개마다 그 성격과 의미가 있다. 마치 산을 타는 사람들이 산의 성격과 모습을 정의하는 것과 같다. 고개의 성격을 파악하지 않으면, 탈진하고 의기저하로 여행을 망치는 수가 있다. 강한 업힐과 지루하게 긴 고개일수록 교만과 자만함을 버리고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어 자연에 순응하면서 달려야한다.

 

고개 중에서도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인 갈령치는 그 길이가 3㎞에 달한다. 평균경사도 8~10%에 달해 사전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초반에 기가 질려 오를 엄두도 못 낼 정도다. 운두령(1089m, 10%, 7㎞), 구룡령(1013m, 10%, 6㎞), 함백산(1574m, 12%, 2㎞)과 같이 이보다 더 높은 고개도 많지만, 수십 개의 고개를 넘은 후 지친 상태에서의 업힐라이딩이기 때문에 체력안배는 필수다. 무엇보다 페달링의 템포가 중요하다.

 

갈령치는 칡이 많이 난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고도 150m에 길이 3㎞로 그리 높지는 않다. 해안도로의 고도는 그리 중요치 않다. 고개의 경사가 얼마인지, 또 그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길의 형태가 어떠냐에 따라 그 고개가 우리에게 주는 체력적·정신적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2011년 6월 5일 13명의 바이콜릭스 대원을 태운 밴은 아침 9시 강릉의 안인진 해변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필자는 포장도로와 비포장이 혼합된 코스라는 점을 고려해 하드테일(샥옵서버가 앞에 1개만 있는 자전거) 대신 풀샥(샥옵서버가 앞뒤 양쪽에 있는 자전거) 캐논테일을 가지고 라이딩에 임했다. 10.5㎏으로 하드테일보다 1.5㎏ 무겁다. 업힐에서 1㎏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러나 한번 탄력이 붙으면 거침없이 나아가고, 비포장도로에서도 마치 세단처럼 편안하게 라이딩할 수 있는 게 풀샥의 장점이다.

강릉 안인진 해변에 서니, 섭씨 30도의 불볕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북동풍의 바람을 등지고 탈 것이다. 안인해변 한식당에서 우럭탕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수년전 북한 잠수정이 좌초됐던 안인진 해안 통일공원 함정 전시관에서 페달을 밟는다. 정동진 해변을 지나 처음으로 나타나는 8%, 300m의 봉화고개를 워밍업 하듯 넘어 금진, 옥계해변을 지난다.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에 고글에 김이 서린다. 파도치는 바다로 풍덩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망상 해변을 지나자 12%, 500m의 사문치 고개! 업힐을 힘들게 넘어 노봉해수욕장에서 잠깐 숨을 돌린다. 다리가 풀릴까봐, 앉지도 못한다. 어달항, 묵호항을 지나 8%, 500m에 달하는 당말재 정상에서 목을 축이고, 북평 감추 해수욕장에서 잠시 쉬어 김 서린 고글을 닦는다.

 

북평교를 지나 애국가 배경화면에서 보았던 추암 촛대바위로 향한다. 촛대 모양으로 깎아놓은 것 같은 바위! 귓속에 애국가가 쟁쟁한데, 많은 피서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삼척에 들어서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저녁 7시! 후미등을 켠다. 12%, 500m의 한치 고개를 넘으니 체력의 70%를 소모한 것 같았다.

 

몸이 지치면, 라이더의 머리는 숙여진다. 머리의 무게는 큰 압박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목운동을 자주해 풀어줘야 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른 정상! 저녁 안개 사이로 멀리 숙소가 있는 덕산 해수욕장이 가물거린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심한 업힐에서는 입으로 호흡하기 때문이다. 물 한통을 입에 털어 넣는다. 박명이 내리는 8시가 넘자 어둠속에 숙소인 나가칸 펜션이 보인다. 펜션주인이 선사한 중국술과 등심구이 바비큐로 저녁을 해결하고, 내일 일정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든다.

 

6월 6일 현충일 새벽 뻐꾸기 우는 소리에 잠을 깨니 해송사이로 여명이 맑아온다. 떠오르는 태양! 대지가 기지개를 펴고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는 아침, 큰 호흡으로 오늘을 다짐한다. 김칫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 기념관이 부근에 있었다. 아침부터 많은 여행객이 레일바이크를 탄다. 마유천을 따라 동막교를 건너자 10% 경사와 2㎞에 달하는 살해치가 우리 앞을 막는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쏟아 붙는다.

숲속에 자리한 비운의 고려 왕! 공양왕릉. 역사의 비극을 마음에 담으며, 용화고개(8%, 300m)와 분토고개(8%, 400m)를 넘어 해신당 언덕에 오른다. 성적인 조각상이 즐비해 이상한 생각마저 드는 해신당! 사과 한입 베어 물고 다시 다운힐. 신남을 지나 임원항에서 오징어 물회로 피로를 풀어본다. 벌써 한명은 탈진해 캄보이 밴에 올라탔다. 항상 사고를 대비해 밴이 따라오는 것이 원거리 라이딩의 필수다. 임원항을 떠나자 비화진, 노진, 작진고개를 넘어 월천교를 지나자 오늘의 마지막고개, 갈령치가 보인다. 

 

섭씨 30도의 불폭탄이 떨어지고, 지열이 이글거리는 갈령치! 3㎞에 이른 동안 내리막 하나 없고, 헤어핀(구불거리는 길)이 수십 개 나있는 고개! 지나는 차들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헉헉 거리는 고개! 우리는 30분간 마지막 힘을 다 쏟아 붓는다.

 

성난 코브라가 독이 잔뜩 올라 빠짝 서 있는 것 같은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구부러진 길. 고통으로 마음이 조급해지면 라이딩은 끝장이다. 구비마다 끝이었으면 했으나 돌고 돌아도 오르막은 계속된다. 얼굴은 시뻘겋고, 고글에는 눈의 열기가 서리고, 가슴은 찢어지고 다리는 끊어질듯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 엄습하는 순간, 마지막 구비를 도니, 자유수호탑이 저 멀리 우리를 굽어본다. 아! 정상이구나!

 

정상에서 쓰러지며 채송화 풀 위를 뒹군다. 눈이 노래지며 폭포 같은 땀이 몸을 적신다. 뭉게구름이 떠 있는 하늘아래에서 필자는 저 멀리 죽변항을 그리며 휴식을 취한다. 수십 개의 고개를 넘어 200㎞의 대장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탈진 속에서도, 앞으로 도착할 죽변항의 파도소리가 귀에 울리고 있었다.

기자 ys@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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