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어느 齒科醫師의 참 醫術

2014.11.03 09:41:36 제611호

정하웅 씨 (73세·서초동 거주)

얼마 전 편집국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40년 이상 오랜 기간 공무원 생활을 하고 퇴직하셨다고 자신을 소개한 정하웅 씨(73세)는 지난 한 해 받았던 치과 치료 후기를 글로 담았다며 게재할 수 있겠냐고 문의하셨습니다. 편집국에서는 정하웅 씨가 말한 ‘근래에 보기 힘든 원장’ 즉, 일반 환자 시각에서 본 ‘착한’ 원장을 지면에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30~40년 전인가? 충치로 인해 왼쪽 위 어금니(3개)와 오른쪽 아래 어금니(4개)에 보철(브릿지)을 한 적이 있다. 무척 오래되긴 했으나 치과에 들르기라도 하면 치아관리가 잘돼 있다는 의사의 말을 종종 듣곤 했다. 너무 방심했던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쪽 위에 있는 보철 끝 부분에 바늘 굵기 정도의 구멍이 생겼던 것 같다. 느낌은 이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달포쯤 지난 뒤에야 치과에 들러봤다. 보철을 제거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맨 끝 치아가 뿌리만 남은 체 몹시 악화돼 있었다. 의사는 “치아를 빼고 임플란트를 하든지, 아니면 잇몸을 깎아 내고 그 위에 보강 이를 박아야 하는데 뿌리가 워낙 약해서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당장 결정하기가 어려워 보철만 제거하고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치아는 ‘오복의 하나’로 알려졌고, 자연치아는 가급적 빼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어 왔던 터라 우선 집 가까이에 있는 치과를 다시 찾았다. 의사가 상태를 보더니 첫 마디가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일산에 있는 또 다른 치과를 찾았으나 답은 같았다. 그 후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고, 지인들의 소개로 서울에 있는 치과 4곳을 더 다녀 봤다. 거기에는 가격이 반값이라는 치과를 비롯하여 진료를 잘한다는 대학병원도 포함돼 있다.

 

답변은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 똑같았다. 가는 곳 마다 X선 촬영을 하기에 “자주 찍어도 몸에 해롭지 않느냐”고 물어봤다가 되레 무안만 당한 적도 있었다. 더는 머뭇거릴 수가 없어 결국은 임플란트를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임플란트는 남의 이야기로 알았고 나에게 해당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전혀 관심 밖이었기에 가격은 물론, 형태와 시술방법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2013년을 맞이했다. 2013년을 ‘이 치료하는 해’로 정하고 인터넷을 통해 집 근처에 있는 치과를 검색해 봤다. 걸어서 20분 내외인 강남역 부근에 치과 여러 곳이 있었다. 그 중 ‘쫛치과’를 택하여 1월 3일 오후에 찾아갔다. 임플란트를 자주 시술한다는 대표원장을 비롯하여 모두 6명의 원장이 있었고, 진료스탭들도 많았다.

 

보철이 전문인 B원장이 나의 담당의가 되었다. B원장은 내 치아(보철했던 곳)를 보더니 “보철을 씌웠던 앞니와 맨 뒤 치아는 치료하면 되고, 가운데는 임플란트를 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단이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일이 드디어 여덟 번째 치과에서 이뤄지게 된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더 이상 덧붙일 말없이 곧바로 다음 날짜를 예약했다.

 

일주일이 지나 임플란트 시술부터 시작됐다. 한참 동안 조용하던 침묵은 원장과 스탭의 주고받는 말에 깨졌다. 시술이 어느 정도 끝나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B원장은 시술이 잘 됐다는 말과 함께 임플란트 치료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나머지 두 개의 치아를 치료한다고 했다. 일반 치료는 임플란트보다 치료비가 월등히 저렴했음에도 진료 횟수와 진료 기간은 몇 배가 넘었다. 치료를 위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 정도를 주기로 치과에 드나들어야 했다.

 

치과를 그렇게 자주 왕래했어도 옛날처럼 그렇게 두렵거나 귀찮지는 않았다. 요즘은 치과마다 예약제가 돼 있어 바로 진료받을 수 있고, 세면대엔 치약과 칫솔까지 준비돼 있다. 진료실에는 최신 장비를 비롯하여 진료차트와 치아 상태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의자에 붙어있다. 특히 쫛치과는 높은 층에 있어 의자에 앉으면 길 건너편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친구 소개로 들렀던 치과도 보인다. 친구가 얘기했던 진료비보다 더 비싸다는 이유로 내가 피했던 곳이다. 스탭의 준비가 끝나면 이어 B원장이 들어온다. “그동안 불편은 없었습니까?”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을 걸어온다. “약간 따끔합니다”, “약간 시릴 수 있습니다” 하는 말에 어느새 긴장이 풀어진다.

 

치과를 다닌 지 6개월, 14번의 내원 끝에 1차 진료가 끝이 났다. 내친김에 끝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른쪽 아래 보철 치아도 봐 달라고 했다. 보철 치아 4개 중 첫 번째는 그대로 보철을 하고, 두 번째와 네 번째만 임플란트를 하고 가운데 세 번째는 브릿지를 하면 된다고 했다.

 

1차(상반기) 진료과정에서 누군가로부터 ‘대표원장에게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더니 전혀 통증이 없이 빠르고 쉽게 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스탭에게 임플란트 시술을 대표원장에게 받아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가능하다고 하기에 그렇다면 대표원장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담당 의사를 바꾸게 된 연유는 대표원장이 임플란트 전문가라는 점도 있겠지만 실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B원장은 임플란트는 물론, 보철, 치주 등 치아 전반에 대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내 임플란트 사후점검은 누구에게 받지”라는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2차(하반기) 진료는 대표원장의 임플란트 시술부터 시작됐다. 시술 전 “무사히 잘되게 해 달라”는 대표원장의 기도 소리가 초조한 내 마음을 한결 안심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믿음이 갔다. 듣던 바대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마무리되었다. 2차 진료는 1차 때와 기간은 비슷했으나 내원횟수는 거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1차 진료를 맡았던 B원장이 얼마나 치밀하고 힘이 들었던 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2차 진료 기간에 B원장을 만날 때마다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가 B원장이 아닌 다른 원장에게 시술을 받았다는 죄책감에서였다. 의사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아닌가하고 나의 좁았던 소견도 자책해 봤다. 그런데 연말이 가까워질 무렵 몇 주 동안 B원장이 보이지 않았다. 스탭에게 물어봤더니 치과 개업을 위해 고향인 거제도로 내려갔다고 했다. 듣는 순간 “혹시나 나 때문에 화가 나서 훌쩍 떠나지나 않았을까”하는 비약적인 생각도 들었다. B원장이 고향으로 내려간 연유가 분명 다른 데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B원장이 치료한 내 치아의 사후점검은 누가 하느냐”고 슬쩍 물었더니 다른 의사가 대신한다고 했다.

 

치과 치료가 끝난 지 어느새 9개월여가 됐다. 아직은 별이상이 없는 것 같다. 모두가 B원장 덕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며칠 전에 B원장이 떠올라서 찾아봤더니 2013년 12월에 개업했다고 돼 있다. 의사라면 대다수가 서울 등 대도시를 선호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육지도 아닌 섬에까지 들어간 B원장의 꿈은 분명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임플란트 치료를 받고자 지방에서 힘들게 오시는 분들을 보고 첨단장비로 안전하게 시술해드리고자 지방인 고향에서 개원을 했다”고 소개돼 있다.

 

또한 “진료 시에는 환자의 건강과 안전한 치료를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무분별한 발치나 비싼 시술을 권하지 않고 꼭 치료가 필요한 부위에만 치료를 한다”는 신념도 강하게 밝히고 있다. 내가 치료받는 동안 그분을 겪어보면서 생각해 왔던 것들과 어찌도 그리 일치하고 있는지, 그동안 그분께 품어왔던 미안함이 금새 사라지는 듯했다. 이 글을 통해 진료 중에 담당 의사를 바꾼 나의 경솔했던 판단을 B원장께 정중히 사과드리면서 용서를 구하는 바이다.

 

지난 1년간 치과 치료를 통해 새롭게 느낀 점은 B원장과 같은 참 의술을 지닌 치과의사를 만났다는 것 외에도 치아의 소중함과 한층 업그레이드된 치과의료술식을 들 수 있다. 또 노인에 제공되는 임플란트나 틀니까지 확대된 건강보험제도 도입도 한층 진전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치과 간의 과당경쟁에 따른 들쑥날쑥한 가격으로 인해 환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고, 일부 의원은 돈이 되는 임플란트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일반 진료는 등한시하는 경향들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풍토야말로 치과 발전은커녕 오히려 불신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환자들도 임플란트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비싸게 했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것은 없다고 본다. 국산과 수입산에 따라 다르고, 재질과 제조회사, 치과의 방침, 환자의 상태 등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치의학이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B원장과 같이 양심적인 의사가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치과계 발전이 이뤄지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 ys@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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