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필 교수의 NLP 심리상담 - 7

2015.10.19 15:06:06

요구와 욕구 사이

사는 게 참 팍팍하다는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부쩍 많이 듣는다. 특정계층이나 국한된 직업이 아니라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푸념들을 들을 때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정말 요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많이 지치고 힘들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사는 게 힘들 때 사람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이민이라도 갈까?’하는 말이다.


최근에 새로운 공부를 핑계로 방학을 이용하여 캐나다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잠깐의 여행이 아니라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부터 카센터, 마트, 미용원 등을 이용하게 되었다. 특이한 점은 거기서 일하는 한인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고학력자이고 괜찮은 직장에서 근무 하였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고학력자에다가 좋은 직장의 경력을 가지고 한국에서는 꺼리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면 여기서는 이런 일들이 돈벌이가 꽤 된다고 유추하였다.


그러나 정작 실상을 물어보니 돈벌이는커녕 식당 일에, 가게 일에 얽매여서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하니 이해가 될 듯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보다 더 힘든 일을 힘들게 하면서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고생이 마음 편하다고 하는 걸까? 환경 때문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공기 좋고 환경 좋은 곳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들과 기대할 수도 없는 돈벌이지만 이민을 가서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일들을 해낸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비록 한국에서 터부시 하는 일들을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일은 그냥 일 그 자체일 뿐이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존중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요구(Requirement)와 욕구(Need)가 있다. 요구란 필요에 의해서 서로 주고받는 행위과정인 것이다. 물건이 필요하거나 맛난 음식을 먹고 싶거나 좋은 차를 타고 싶거나 그리고 아픈 곳을 치료받고 싶거나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요구들이다. 요구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므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수준에서 충족이 되고 상호간에 원활히 주고받으려면 명백한 규정과 규칙이 있어야 한다. 만약 명백한 규정과 규칙이 없이 개인의 요구만을 강조한다면 사회혼란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싶다면 정해진 규정과 규칙을 따라야 한다. 당연히 물건을 사고 싶은 요구가 있으면 대금을 지불하는 것처럼 요구에는 규정과 규칙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요구가 정도를 지나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규정과 규칙이 정해놓은 그 이상의 요구를 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요구에 대한 돈을 지불하였으니 마치 자신을 상전처럼 대접해 달라고 하는 태도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얼마 전에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이 옥상에서 투신한 적이 있었다. 또한 아파트 경비를 하던 분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이 있었다.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였을까? 그 분들도 집에서는 존경 받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편과 아내였을 텐데….


병원에서도 어이없고 예의 없는 환자들을 대할 때가 있을 것이다. 물론 고객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주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요구에 상응하는 대가, 규정과 규칙을 지켰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은 요구를 위한 규정이나 규칙만이 전부가 아니다. 바로 사람에게는 욕구라는 것이 있다. 욕구란 다른 사람에게 존중 받고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이다. 한국에서는 터부시하는 일들을 이민 가서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바로 존중 받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이다.


지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 때문이 아니라 존중 받지 못하는 존재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기에 꺼려지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이 삶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사회가 성장하려면 요구가 다양해져야 하지만 사회가 성숙해지려면 욕구가 상호충족 되어져야 한다. 미성숙 된 어린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정신이 쏠려있지만 성숙된 사람은 손잡이를 밀고 들어서서 뒤따라오는 사람까지 배려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다양한 요구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욕구충족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아름다운 가을! 병원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부터라도 서로의 욕구충족이 가을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어 갔으면 한다.


글 / 손정필

평택대학교 교수
한국서비스문화학 회장
관계심리연구소 대표

신종학 기자 sjh@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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