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2016.01.13 14:32:12 제666호

새해를 위한 세밑질주

언제나 한해가 저물어 가는 세밑이 되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올해는 무엇을 하고 얼마나 계획했던 일들이 성취되었는가를 생각하면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매년 결산표이다. 하지만 올해 성취한 것은 나로도, 피덕령의 안반데기 배추밭, 그리고 메밀꽃의 봉평, 양구두미재 라이딩이다.


지나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고, 계속 흘러가는 세월 속에 내가 노후의 생활을 얼마나 잘 영위하고,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일이나 행동을 얼마나 했는지, 선배로서 모자란 점도 많다. 인생 70세 고려시대의 전설로는 고려장이라 해서 산에다 버릴 그런 나이다. 국가에서 주는 어르신 혜택도 많다. 이 혜택이 많을수록 점점 더 노인이 되는 것이다. 도연명의 雜詩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人生無根[인생무근체] / 飄如陌上塵[표여맥상진]
分散逐風轉[분산축풍전] / 此已非常身[차이비상신]
즉.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이, 길 위에 먼지같이 부질없이 나부낀다. 나뉘고 흩어져 바람 따라 떠도니 이는 이미 무상한 몸이다.


盛年不重來 [성년부중래] / 一日再難晨 [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 [급시당면려] /  歲月不待人 [세월부대인]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을 두 번 맞지 못하고, 때가 오면 마땅히 힘써 노력해야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실 그렇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인생, 생이 끝나면 흙속으로 사라지고, 먼지가 되어 바람 따라 흩어져 떠도는 우리의 생은 무상일 뿐이다. 젊음과 지나간 시간은 물과 같아 돌아오지 않으니 때가오면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주어진 짧은 삶을 살아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노래의 가사와 같이 벽시계처럼 세월은 고장도 나지 않는다.


2012년 12월 22일 저물어가는 한해가 안타까워, 새해를 기약하는 의미로 자전거로 동해안을 돌기로 했다. 울산에서 출발해 대진항까지, 150km의 긴 여정! 이곳의 기온이 영하 4~5도 이므로 그리 호락호락한 여정은 아니었다. 울산을 출발해 31번 국도를 타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신라문무왕의 릉인 대왕암을 거쳐 감포, 양포, 구룡포를 지나 우리나라 지도의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을 거처 구만리 흥한리를 따라 하선대에서 바다건너 한국경제의 상징인 웅장한 포항제철을 바라보며 라이딩을 마쳤다. 이 코스는 2013년 1월호에서 미친자들의 질주라는 제목으로 얘기한바 있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라이딩 시 체감온도는 영하 15도 이상으로 느껴졌는데, 해가진 해안언덕의 칼바람은 귀를 베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밴에 자전거를 싣고, 포항의 죽도시장을 찾았다. 포항하면 유명한 과메기! 우리대원 모두가 한 가게에 들려 싱싱한 과메기 를 구입하고, 근처 과메기 식당에서 과메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은, 달리는 운동 뿐 아니라 도시의 특산물을 맛보는 매력도 있다. 김이 유리창에 서려 밖이 얼마나 추운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피부가 근질거린다. 추워서 긴장된 피부가 따뜻한 온도에 이완되는 순간이다. 자전거 복장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곧,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울산에서 왔다고 하니까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라며 말끝을 흐린다. 곧 우리에게 고생했다고 안주와 술을 권한다. 살갑게 맞이하는 포항사람들의 온정에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포항의 맛을 느끼며, 숙소가 있는 흥해로 밤을 뚫고 달려 흥해프라자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온기가 퍼지면서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꿈나라에 빠져 들었다. 문득 잠을 깨니 23일 6시다. 깜깜하다. 나는 아무생각 없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숨 막히는 추위에 몸이 오그라들었다. 오늘도 힘든 라이딩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은 자연의 시간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듯 현란한 모습으로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솟아오르는 태양에 물든 구름과 대지의 어둠이 빛의 세상으로 변하는 이 순간 나는 이미 새해의 태양을 음미하고 있었다. 8시 30분 라이딩이 혹한 속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칠포해수욕장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영하4도의 사납게 몰아치는 강풍을 뚫고 칠포해안으로 달리는데 벌써 마스크는 얼어붙고 손가락과 발끝의 고통이 엄습한다. 영하 15도의 체감온도를 극복하며 달리는 우리는 지나가는 차속의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마치 국가대표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진다. 얼어붙은 뺨, 끊어질듯 고통스런 손가락! 참고 참으며 이를 악문다. 해안을 굽이굽이 돌아 월포, 사방기념공원 1km의 10%의 빡센 양지고개를 오른다. 좋아해서 타는 자전거 그러나 고통을 통해서 즐거움을 발견하고, 이 언덕을 오르므로 뭔가 해냈다는 성취의 기쁨이 솟구치는 과정 속에 몸과 마음이 강건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부러진 가냘픈 노인의 몸이 아니라 강건한 70세의 우람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라 믿는다. 방어리 해안길에서 갑자기 불어오는 돌풍은 우리를 날려 보낼 듯 위협하고 화진리 해변, 영화에도 나왔던 5인의 해병 순직비를 지나, 화진포구의 정자에서 잠시나마 혹한의 강풍을 피해본다. 남정, 부경, 장사의 경계를 지나 장사해수욕장에서 털썩 주저앉는다. 삼사해상공원 언덕을 피해 해안도로로, 날아갈 것 같은 폭풍 속에 강구교를 넘어 강구항으로 향한다.


이곳의 특산 영덕대게를 맛보러 축산항으로 달린다. 축산항을 지나자 오징어 덕장이 줄을 지어 우리를 맞는다. 절경의 강축도로(강구-축산도로)를 달려 대진항에 이른다. 대진항 외진곳에 있는 대게잡이 어선 선장의 집에 닿았다. 저렴하고 입에 살살 녹는 맛의 대게! 선장의 솜씨로 요리된 대게는 오늘의 고통을 날려버릴 만큼 맛있었다. 70세 나이에 언제나 바다와 사는 노인 어부! 어떤 유혹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어부의 천직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선장의 말씀, 대게 잡는 것 이외는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고, 매번 생명을 위협하는 바다와 싸우며 어부의 일에 매진하는 것이 만족이고, 주어진 생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의 보람과 기쁨이라 말하는 선장의 말에 감동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게파티는 즐거움과 기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150km의 장정이 끝나는 지금, 오늘의 떠오르는 태양이 새해에도 떠오를 것을 기대하며 오늘의 작은 고통과 기쁨 속에 소중한 시간 속에서, 대원들의 행복해하는 웃음소리가 식당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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