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필 교수의 NLP 심리상담 - 28

2016.09.08 11:54:19 제697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가을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학창시절 안톤 슈낙(Anton Schnack)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을 읽고 적잖은 감성적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슬픔이 무엇이며 또한 조금만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 슬픈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계기가 되었다. 슬퍼서 슬픈 일들이기 보다는 주변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소외되어진 일상들이 슬픔으로 와 닿았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즉, 사회로부터 주변으로부터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되어진 일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로 높은 현실,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의 자살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대학을 힘들게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준비되지 않은 100세 시대에 증가하는 황혼이혼, 소녀상을 지키려고 추운 겨울의 칼 바람과 폭염의 여름 밤낮을 지키고 있는 젊은 청년들, 정부의 국방정책으로 인하여 근 60여 일의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지역주민들, 자식을 잃은 울분을 마음에 묻어두고 아직도 그 아픔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보다 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너무도 사소하여 마치 일상의 일처럼 느껴져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정년퇴직은 아니더라도 자식들 학비를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직장을 다니기 위해 주말에도 눈치를 보며 출근하는 중년들, 치솟는 집값과 전세를 피하여 서울 외곽에서 새벽 일찍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하루 최소한 12시간 이상을 집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팍팍한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자영업자들, 배운 기술이 운전뿐이라서 평생을 사무실에 근무하다 택시 핸들을 잡은 은퇴자들, 노후에 보장받으려고 힘들게 부었던 보험을 정리하는 가정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지만 그러기에 그 슬픔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사는 모습이기에 그것이 무슨 슬픈 일이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일들을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겠는가? 어찌 보면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처럼 느껴지기에 자신이 처해진 상황만을 표현한다는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수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이 직면한 상황이기에 외롭고 힘들겠지만 견디고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 힘들고 외로운 상황을 견디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관심과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전반을 이끌어가는 정부와 위정자들은 국민들에게 ‘힘들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힘든 상황을 견디고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는 희망의 말들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너희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성적이 나쁘다고 인생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 ‘너희에게는 꿈이라는 기적 같은 힘이 각자에게 잠재되어 있어’ 라는 말로 열정을 심어주어야 한다. 가정에서는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하셨어요’, ‘항상 가족을 위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라는 사랑의 표현을 해 주어야 한다. 직장에서는 ‘일을 도와주어서 고맙습니다’, ‘늦게 까지 일한다고 수고했어요’라는 격려의 말들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말들이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이 아닌 진심을 담은 진정성으로 표현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힘들고 외로운 일들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마법과 같은 주문이 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어떤 상황이나 처해진 현상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상황이나 현상에 직면하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통을 외면하는 현실이 슬픈 일이다.

 

상담심리학의 대가 로저스(Carl Rogers)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만들어진 존재(being a person)가 아닌 만들어지는 존재(on becoming a person)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진실성 있는 공감을 받았을 때 비로소 자신의 내재된 잠재력을 발휘하는 만들어지는 존재가 된다. 병원도 이러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공간이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치료의 공간을 넘어서서 치유의 기능을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변하는 모든 것, 변하지 않는 많은 것들, 사라지는 것들과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또한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기에 그 슬픔을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더욱 필요하다. 

 

글/손정필 교수 (평택대학교 교수 / 한국서비스문화학 회장 / 관계심리연구소 대표)
jpshon@gmail.com

신종학 기자 sjh@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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