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논단] 나이가 들어감에 대하여

2021.06.10 14:17:38 제923호

노원종 논설위원

최근에 동기들이나 비슷한 연령대의 선후배들을 만나면 가장 큰 이슈는 교정이나 임플란트 새로운 술식이 아니라 ‘과연 이 지긋지긋한 치과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다. 필자도 이제 개원 13년차가 되니 개원 초 가졌던 열정이나 의욕은 온데간데없고 갖가지 스트레스와 잡무에 지쳐 탈진상태로 퇴근길에 나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야간진료를 끝내고 돌아가는 퇴근길, 밤 10시… 대치동 학원가를 지나가다 보면 좀비들처럼 초점 없는 눈동자와 멍한 표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중고등학생들의 소망이 의, 치, 한 세 글자라고 하는데… 필자가 이렇게 때려 치우고 싶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하고 싶은 소망이라고 하니 가끔은 그 친구들한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리고는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열심히 해보자 다짐하지만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그런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삶의 연속이다.

 

그래서 필자는 얼마 전부터 비슷한 인생을 먼저 살고 계신 치과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있다.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어서 선배들은 행복한 치과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 건지…

 

얼마 전 퇴임한 대학 은사님과 저녁 식사자리가 있었다. 본과 2학년 때부터 수업을 들었으니 인연으로 따지면 25년째로 예전에는 감히 겸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위치였다. 전공과도 다르기에 친해질 기회가 없었으나 우연한 기회를 통해 최근 3~4년 동안에 가까워진 사이다. 워낙 강의도 잘하고 임상으로는 대한민국 톱클래스의 실력을 갖춘 교수셨기에 이분은 고민 없이 인생을 살아오고 계신 것 같아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하다고 생각하던 교수님은 필자보다 더 많은 고민과 번뇌를 잘 극복하며 살아오셨고, 오히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당신이 지금 내 나이라면 하지 않았을 후회스러운 경험담을 잔잔히 들려주셨다.

 

은사님께서 해주신 첫 번째 조언은 자신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져보라는 거였다. 은사님께서도 젊은 시절 워커홀릭에 너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고 살다 보니 정작 내 자신을 함부로 대하며 살게 됐다고. 혼자만의 시간이나 내가 정말 즐거워하는 취미 하나 없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냥 하는 일 모두가 짜증나고 하기 싫어진다는 거였다. 당신도 젊었을 때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었지만 이제 당신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으니 요즘은 진료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환자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하신다.

 

두 번째로 해준 조언은 너무 많은 인맥 쌓기는 이제 멈추고, 관계의 소중함을 느끼며 나와 맞는 친구들 3~4명은 꼭 만들어 놓으라는 거였다. 그 중 한 명이 배우자이면 정말 좋고, 생각보다 인생의 길이 험하고 멀기에 함께 손잡고 나아갈 3~4명의 진짜 친구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치과의사라서 겪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는 것들이라 내가 위로를 해줄 수도 있고 나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삶의 동반자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조언은 ‘내 본연의 일을 정말 좋아했더라면’이었다.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시지만 예전에는 왠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일들을 하느라 내 일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막상 퇴임을 하니 치과 본연의 진료에 더욱 더 집중하고 일 자체를 즐기며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으신단다.

 

거하게 한잔하고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살짝 어깨동무를 하시며, 당신이 너무 목사님이나 법률스님처럼 고리타분한 얘기를 한 거 아니냐며 웃으시는데 내 어깨에 올리신 은사님의 체온이 따뜻하게 전달되면서 어쩌면 이 분이 내 진짜 친구 중 한 명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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