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小暑) 단상 : 기다림

2021.07.09 11:40:59 제927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24)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7일)은 소서다. 24절기 중 열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며,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작은 더위’라고 소서(小暑)라 하였다.

 

이제부터 더위가 시작된다. 가을에 접어드는 입추까지 초복, 중복, 대서를 거쳐야 하고, 말복을 지나 칠석이 되어야 선선해진다. 소서부터는 더운 바람이 불고 장마가 시작되니 습도가 높아진다. 하지에 심은 모에서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무성해지려는 잡초를 제거해 주는 김매기를 하는 때다. 이제부터 더위에 체력이 떨어지고 나른해지고 입맛도 떨어진다.

 

이때부터 먹을 것이 풍성해진다. 밭작물이 왕성하게 자라서 옥수수, 고구마, 고추, 가지 등 많은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과일이 풍성해지니 복숭아, 수박, 참외를 구하기 쉬워진다. 선조들은 더위로 떨어진 체력은 제철 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하라 하였다. 양력으로 7월 5일에서 7일경에 들어오고, 올해는 7월 7일이라서 소서를 지나고 첫 번째 경(庚)이 들어오는 날이 11일(경신일)이니 초복이 4일 남았다. 초복에는 삼계탕을 먹어 기력을 회복하고 더위에 대비했다.

 

소서는 봄에 열심히 일한 것을 관리 유지하기 시작하는 때다. 모든 일이 그렇듯 관리와 유지는 중요하다. 약간 보이기 시작하는 잡초들을 초기에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낭패를 보게 된다. 더불어 기다림의 시작이다. 가을에 벼와 과일을 수확할 때까지 인내심을 지니고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장마로 해가 뜨지 않는 경우도 있고, 태풍으로 수해나 풍해를 당하기도 한다.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선원들처럼 소서는 장마와 태풍이라는 시련에 직면할 각오를 다지며 긴 기다림을 시작하는 날이다.

 

24절기는 때를 이야기한다. 때는 시간이며, 생명체에게 시간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식물은 꽃을 피워야 하고 벌은 꿀을 따야 한다. 인간 또한 생존을 위한 먹을 것을 준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시간은 순서를 의미한다. 씨 뿌리고 관리하고 수확하는 것이 순서다. 시간은 결국 때에 맞는 임무와 순서의 흐름이기 때문에 때에 맞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순서를 따르지 않으면 혹독한 결과를 받아야 한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수확할 것이 없고, 여름에 관리를 하지 않으면 수확물이 줄어든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며,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도리다.

 

그런데 현대 물질문명의 발달과 디지털화는 시간의 속도를 단축시켰다. 이에 따라 수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하우스에서 재배가 가능해 제철이 아니어도 다양한 채소를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간의 단축에 따른 변화에는 적응했다. 하지만 순서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졌다. 속도는 단축되어도 순서가 바뀌지 않는 것이 자연의 질서다. 순서의 단계가 짧아지다 보니 없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기 쉽다. 순서는 반드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기다림은 성숙이고 숙성이다. 기다림 없이 나온 결과는 숙성과 성숙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피와 땀을 흘려 노력으로 10억원을 모은 사람과 로또로 얻은 사람이 돈을 유지하는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오늘 주식 빚투가 24조원으로 역대 최고라는 기사가 보인다. 아직도 영끌로 집을 사고, 20~30대가 주도 세력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시대가 과학 문명으로 시간을 단축시켰지만 결코 순서를 바꾸지는 못한다.

 

인간에게 순서는 심리적으로 성숙할 시간이다. 마음에는 과학이 단축시킬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기다림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마음은 힐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가 영끌과 빚투를 우려하는 것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심리적 성숙단계를 거치지 않은 결과물은 본인 것이 아니며 결과가 금방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고마움을 만들고, 고마움은 귀함을 만든다. 기다림이 없으면 고마움이 없고, 고마움이 없으니 귀함도 없다. 고마움과 귀함의 가치가 자연의 가치다. 한 톨의 쌀알과 사과 한 개가 열리는 것이 고마움이고 귀함이고 기적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사라져가는 시대에서 소서 날 아침에 기다림을 생각해본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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