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논단] 과거를 공부하고 숙고한다

2024.01.11 11:35:43 제1048호

박용호 논설위원

백세시대의 꿈에 취해 있지만 죽음은 벼락같이 온다. 사람 나이 70이 넘으면 아무도 모른다. 치과 역사계의 거장 한 분이 또 가셨다. 7년 전 이병태 선생님에 이어 김평일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은 두 달 전 강진 여행길에서였다. 치문회(齒文會) 좌담회에서 한국전쟁 피란 경험과 중국 동북공정을 실감 나게 말씀하시던 사관(史官)이셨다. 최근 정기모임에 계속 불참하셔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가 했는데, 새삼 선배의 부고는 인생과 역사를 직시하게 한다.

 

필자가 본의 아니게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사(會史)편찬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고사하려 했지만 인생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지금 해야 할 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께 고문을 맡아주시라고 부탁하는 카톡을 보냈는데 응답이 없는 터였다. 고인은 2015년도 편찬위원장을 역임하셨다.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린다고 생각하니 급, 마음이 무거웠다. 감투의 중압감이 더해지는 듯했다. 정약용의 다산초당에선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배지에서 제자들을 독려하며 열악한 초가 환경에서 저작에 몰두하던 학자의 인품에 감화와 우울감이 교차됐다.

 

회사(會史)란 무엇인가? 서울시치과의사회 역사를 10년 단위 증보판이나 혹은 몇십 년 단위 통사로 기록한다. 이병태 선생님이 수십여 위원들과 편찬한 1995년, 70년사는 방대한 볼륨으로 압도한다. 특히 신재의 선생님의 근세사는 독보적이다. 치과의사는 누구인가? 정체성이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대부분 회원이 존재 사실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것이다. 필자도 회무에 관여하기 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50대 이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한 개인의 생활 축이 가정, 직업, 사회, 국가라면 전부 나름의 역사가 있듯이 직업적 역사도 필수적 소양이 아닌가. 왜 역사를 알아야 하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역사란 무엇인가’로 돌아가야 한다. E.H.Carr의 저작 <What is History?>를 인용해보자. 그는 고, 중, 근대를 아우르고 좌, 우 역사이념을 섭렵하는 방대한 지식과 견해를 피력했다. 기념비적인 저작 <러시아사>를 남기고 마르크스를 우호적으로 평가했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한때 금서(禁書)로 지정됐던 것은 오버로 생각한다.

 

그는 비유를 곁들인다. ‘역사적 사실(fact)’은 생선장수의 좌판 위에 있는 생선이 아니다. 팩트는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고기와 같다. 역사가가 무엇을 잡아올릴 것인가는 때로는 우연에, 그러나 대개는 그가 바다 어느 곳을 선택해서 낚시질하는지에, 그리고 어떤 낚시도구를 선택하여 사용하는지에 좌우될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소들은 그가 잡기 원하는 고기 종류에 따라서 결정된다. 대체로 역사가는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팩트들을 낚아올릴 것이다. 역사는 ‘해석’을 의미한다.

 

치과계 근세사 팩트는 사료 발굴이 어렵고, 현재로 올수록 팩트는 넘치지만 선택이 어렵다. 이번에 과업을 실행할 위원들은 정예멤버로 구성하고 있다. 1세대 역사 서술가인 김계종·변영남 고문, 치문회 권택견 회장, 정재영 자문위원, 2세대 치과의사학회 이해준 회장, 이주연 부위원장, 3세대 권훈·김준혁 위원 등이 있다. 함동선 부위원장과 최성호 간사, 남현애·김용호·심동욱·오성환·강성현 위원도 위촉할 예정이다. 보수는 없다. 오로지 이름 하나 남기는 마음으로 내 직업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넘긴다는 열정과 자긍심, 사명감으로 충만한 분들이다.

 

1925년 일단의 경성치전 출신과 일본 유학생 출신 치의들이 한성치과의사회를 발족시켰다. 특히 치협 창립기념일이 권훈 위원의 제청으로 1921년에서 1925년으로 변경됐고, 2025년은 1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있어 더욱 의미깊다. 주역은 서울시치과의사회인 셈이다. 지부의 주인인 25개 구회의 역사를 확대 수록할 것이고 봄에는 좌담회도 개최할 것이다. 이에 발맞춰서 회사는 100주년 통사로 제작될 것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나아 갈 것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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