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퇴근길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궐선거 후보자였다. 그는 경기지부 회원들에게 비급여공개 자료 제출을 거부하라는 문자를 보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왜놈들이 쳐들어왔는데 성문을 그냥 열 수는 없다”는 격한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정작 성문을 가장 먼저 연 사람은 바로 그였다. 비급여공개는 이미 늦었으니, 이제 비급여보고를 반드시 막겠다고 했다.
돌아보면 그마저도 허망한 다짐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비급여자료 제출이 이제는 치과계의 일상이자, 뉴노멀의 시작이 되었다.
2022년 제주 총회에서는 횡령사건에 대한 대의원의 질의가 명확한 답변 없이 넘어갔다. 이어진 치협 압수수색 사건은 공중파 뉴스로 보도되며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그 여파로 현직 감사를 탄핵하자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내부 감시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상황, 책임 없는 말들이 남긴 상처를 누구도 수습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회무는 흘러갔다. 이 무감각이야말로 우리의 또 다른 뉴노멀이었다.
이제 통합돌봄의 흐름 속에서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다시 발의되었다. 단순한 직역 갈등을 넘어, 의료체계의 권한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수적 우세와 조직력으로 무장한 그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응을 했는가. 지난 2021년도의 성명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5년 5월 복지부의 의견 요청에 ‘의견 없음’으로 답했다는 사실에 참담하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스스로 발언권을 포기한 일이다. 제도 변화의 파고 앞에서 무력하게 서 있는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자, 또 하나의 뉴노멀이다.
비급여제도와 의료기사법 개정이 가져올 결과는 명확하다. 그 부작용이 국민의 건강권 침해를 향하고 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제기하면 기득권 지키기로 매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
회원들의 불안과 불만이 높다. 주변에는 초저수가 치과와 그 광고가 넘쳐난다. 비급여제도의 정착과 함께 폭증했다. 그리고 치과의원 상위 5%의 연매출이 20억이라는 기사가 1면을 장식하고 있다. 초저수가와 20억 매출의 괴리감이 우리에게 더욱 아픈 상처를 주고 있다. 그나마 우리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갈 길을 잃은 안타까운 뉴노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부와 동창회 골프행사 참여나 백주년 기념 전시행사와 같은 행사와 의전이 아니다. ‘뉴노멀’은 단순히 달라진 현실이 아니라, 대응을 포기한 결과가 제도화된 상태다. 내부의 신뢰 회복과 외부 협력, 그리고 정책 대응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변화의 파도는 우리를 더욱 깊은 곳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다가오는 치협 선거의 이슈는 부정선거의 책임 문제와 비정상적인 법무비용 지출 문제로 압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과거사 정리가 아니라, 조직의 기본 구조와 신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출발점에 가깝다.
‘하자(瑕疵)’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태(Ist-Beschaffenheit)와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Soll-Beschaffenheit)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하자보수보다 민생이 우선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하자를 방치한 채 논의하는 민생은 사상누각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하자를 바로잡지 못할 때, 잘못된 관행이 제도화되는 또 다른 뉴노멀만을 만들 뿐이다.
뉴노멀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