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편집인 칼럼] 시스템의 기본이 무너진 사회, 본질을 잃어버린 총체적 부실

2026.06.11 13:08:06 제1164호

김성헌 편집인

“투표용지가 없어서 투표를 못 한다”, “피부과라고 해서 왔는데 피부 질환 치료를 못 받는다” 최근 보도된 이 충격적인 뉴스들을 접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참담함을 느꼈다. 간혹 치과에 내원한 환자가 기본적인 검진을 위한 방사선 촬영을 거부할 때, 필자가 가벼운 어조로 건네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무기 없이 나가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했던 비유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현실이 된 것이다.

 

지난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의료 현장의 본질을 잃어버린 진료 편중 현상은 각 분야가 마땅히 갖춰야 할 핵심 기능과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뼈아픈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주주의사회에서 투표용지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원이다. 물론 선거 관리 부실이나 수요 예측 실패로 투표용지가 바닥나 유권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투표를 포기해야 했던 전대미문의 사례가 세계 역사상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일부 주와 자치구 선거(2022~2024년)에서 팬데믹 발 공급망 붕괴로 투표용지 배송이 지연되어 선거가 파행을 겪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번 ‘6·3 사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선관위의 현실 파악과 대처 방식이 일반 국민의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기대 수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사전투표율과 본투표 수요 예측에 실패해 놓고 도리어 음모론을 의식해 필요 수량보다 빡빡하게 용지를 인쇄했다는 해명은 지난 수년간 쌓여온 국민적 불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투표소 현장 곳곳에서 시민들의 거센 항의와 개표 거부 사태가 잇따랐고, 결국 중앙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사퇴했으나 여전히 사건의 본질적인 해결과 진상 규명은 멀어만 보인다. 앞으로 수사기관의 조사가 진행된다고 하지만, 소위 ‘가족 채용 비리 의혹’ 등으로 얼룩진 채 감사원의 칼날조차 피해 가던 그들만의 철옹성이 과연 낱낱이 파헤쳐질 수 있을지 깊은 우려가 앞선다.

 

이러한 행정의 부실은 필수 의료 인프라가 무너져 내리는 악순환의 궤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그 시작점으로 지적되는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는 필수 진료과 기피 현상을 낳았고, 여기에 의료 사법 리스크까지 가중되면서 현장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의료진이 비급여 미용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간판만 피부과’일 뿐 본연의 질환 치료 기능을 상실한 기형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정작 아토피나 화상 등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실제 피부 환자들은 골든타임을 놓친 채 대형 병원이나 묵묵히 근본을 지키는 일부 ‘소신 수호’ 병원을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됐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필수 피부 질환 치료 수가의 현실은 우리 치과계가 마주한 벽과도 전적으로 유사하다. 치과의 핵심인 근관 치료나 난이도 높은 외과 치료, 특히 발치 수가의 경우 OECD 주요 국가 평균과 비교하면 약 1/3에서 1/4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기형적인 수가는 의료 공급자의 진료 행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결국 일선의 의료인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 다른 비급여 영역이나 미용으로 원치 않는 변신을 시도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선거관리기구가 투표용지를 준비하지 못해 참정권을 묶어버린 사건과 병원 간판을 걸고도 환자의 질병 치료를 외면해야 하는 의료 현실은 결국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같은 궤를 공유한다. 조직의 외형은 그럴듯하게 유지되고 있으나 내실을 채워야 할 원초적 책무가 마비됐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 안전망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과 재점검이 얼마나 시급한지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 우리에게는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조상들의 강인한 투혼이 흐르고 있으며, 가장 불가능해 보이던 순간에도 반전의 역사를 만들어온 저력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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