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17년. 그동안 수많은 환자를 만나고, 수많은 치아를 치료해 왔지만 지금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거의 매일 해야 하는 말이라 더 힘들고, 말하는 순간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한마디.
“이를 빼야 합니다.”
환자에게 치아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처음 발치를 권유받는 환자에게는 그 상실감이 상상 이상으로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렇게 발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마치 큰 병이라도 선고받은 것처럼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분이 있는가 하면,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혹시 원장님이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라는 의심 어린 눈빛을 보내는 분도 있다.
사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은 단순히 아플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다. 평생 함께해 온 자신의 치아를 영원히 잃는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신체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그래서 발치는 치료가 아니라 거대한 상실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 역시 “이를 빼야 합니다”라는 말을 꺼낼 때면 늘 긴장하게 된다. 혹시 조금이라도 더 살릴 방법은 없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엑스레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예후를 다시 한번 계산해 본다. 치과의사에게도 발치는 정말 쉬운 치료가 아니다.
환자들은 종종 치과의사가 쉽게 발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치과의사는 가능하다면 치아를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한다. 특히 치과보존과 전문의로서 치아를 살리는 것이, 치아를 보존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이기도 하다.
그렇게 치과의사로서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나는 미국 최고의 의사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책에서 환자와 의사가 맺을 수 있는 관계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의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부장적 관계’이고, 두 번째는 의사가 정보만 제공하고 환자가 선택하는 ‘정보 제공형 관계’다. 하지만 저자는 이 두 방식 모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해석적 관계’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발치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의사는 정답을 대신 내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것. 이 대목을 읽으며 발치 진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환자는 흔히 “빼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라는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 질문 뒤에는 훨씬 더 큰 고민이 숨어 있다. ‘앞으로 얼마나 불편해질까?’, ‘얼마나 아플까?’,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발치를 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 자체가 아니다. 왜 지금 이 선택이 가장 좋은지, 환자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치아를 상실한다는 것은 분명 큰일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치아를 붙잡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통증과 더 많은 치료, 더 큰 비용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할 때도 있다. 그리고 사실 이게 더 큰일이다. 그럴 때 발치를 권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기능을 상실한 치아에 집착하는 것은 환자의 삶의 질을 무너뜨릴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치과의사는 최대한 치아를 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옳은 선택을 환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 진실을 믿기에, 오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한마디 중 하나를 가장 신중한 언어로 건넨다. “이제는 발치하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