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기다림

2026.08.16 08:44:24 제1172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769)

요즘 영화 오디세이가 한창이다.《일리야드(Iliad)》와《오디세이(Odyssey)》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인류 서양 문학의 최고 고전으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준다는 황금사과로 시작된 분쟁은 결국 트로이 전쟁을 유발했다. 전쟁영웅 아킬레우스가 죽기 전까지가 일리야드고, 트로이 목마를 만든 장수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귀향하기까지가 오디세이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반면 집에서 기다린 아내는 10년 전쟁을 포함해 20년을 기다렸고 결국 남편을 만나 왕위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신화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있다. 중국 서유기 주인공인 현장법사는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출발해 인도를 다녀오는 데 16년이 걸렸다. 사마천의《사기(史記)》〈진세가(晉世家)〉에 진나라 왕자 중이는 계모의 모함을 피해 해외를 떠돌며 왕이 되기 전까지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였다. 불교 선종의 시조 달마조사는 벽만 바라보는 면벽(面壁) 수행을 9년 동안 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렇게 무엇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너무 빠름을 요구한다. 심지어 20·30대는 빨리 부자가 되길 원한다. 무리해서 빚으로 투자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최근 레버리지 ETF에 무리한 투자로 큰 손실을 본 청년 세대가 많다는 소식이 안타깝다. 사실 지금은 모든 것이 빠른 시대다. 느림과 기다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너무 올드한 주제다. 하지만 빠름과 조급함은 다르다. 느림과 기다림이 멈춤 또한 아니다.

 

오디세우스의 10년과 아내의 20년, 현장법사의 16년, 중이의 19년, 달마의 9년이란 시간의 기다림은 그저 단순한 멈춤이 아니었다. 오디세우스는 표류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를 저었고, 아내는 낮에는 베를 짜고 밤에는 풀었다. 현장법사는 사막과 설산을 넘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중이 왕자는 19년 망명 동안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았고, 달마는 마음속에 앉아 있었다. 느렸지만 게으르지 않았고, 지속적인 기다림으로 시간과 내공을 축적하였다. 이런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내공으로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이름이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조급함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리를 알고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간혹 한두 사람은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본주의 속성은 소득의 공정한 재분배가 아니고 승자독식주의기 때문이다. 자연계는 아기를 낳는 데는 10개월의 태중 성장을 요구하고, 밥을 짓는 데도 30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세상 모든 일에는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건너뛰면 밥이 설거나 미숙아가 된다.

 

20·30세대 투자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들이 진정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할 만큼 공부를 하고 기업을 분석하였는가가 문제다. 조급하거나 과정을 건너뛰면 부실해지고, 부실은 지속력을 상실케 한다. 결국엔 멈춘다. 물론 모든 것이 빠른 세상에서 자신만 느리면 뒤처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빠르게 달리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엔 탈진하여 멈추게 된다.

 

요즘 어떤 강남 집 한 채가 100억원을 하고, 20평 아파트가 30억원이 넘는다. 모두가 10억원 빚은 비싼 금액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실정이다. 결코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이건만 뉴노멀이라는 말장난으로 감추어졌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비정상은 늘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그 과정은 매우 혹독함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죽음을 당했음에도 오디세우스가 홀로 집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약속을 지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무한 경쟁 시대 속에서도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속도가 필요하다.

 

초봄 잠깐 햇살에 조급하게 튼 싹은 한 줄기 찬바람에도 시들어 버린다. ‘오디세이’는 성급하고 조급함보다 비록 느리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림이 주는 성숙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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