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를 들여다보다, 한 사람의 고독을 보았다

2026.08.17 08:51:31 제1172호

[여르미 도서관-6] 책은 어떻게 치과의사의 삶을 바꾸는가
류지아 원장(작가 여르미)

잇몸이 부었다는 이유로 내원한 환자를 오전에만 열 명 가까이 만났다. 그래서 처음 그 환자를 마주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또 치주치료를 원하는 환자인가. “왼쪽 치아가 흔들리고 얼굴이 부었어요.”라는 주소를 듣고 환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바로 직감했다. ‘아! 이 환자는 개인병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환자가 아니구나’.

 

가끔 환자의 엑스레이를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보일 때가 있다. 그날의 60대 남성도 그랬다. 남루한 옷차림, 때가 묻은 까만 손. 입안에는 남아 있는 치아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 얼마 남지 않은 치아마저 검게 썩어 있었고, 얼굴 한쪽은 눈까지 퉁퉁 부어 있었다. 이미 염증이 얼굴 전체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염증 범위가 너무 커요. 큰 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냥 약이나 처방해 주슈.” “지금 상태가 심각합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싫소. 나는 그냥 약만 먹을 거요.” “…….”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막상 설득이 되지 않으니 난감했다. 월요일 아침이라 환자는 밀려 있었고, 내가 이곳에서 해줄 수 있는 치료에도 한계가 있다 느꼈다. 그래서 일단 필요한 지시사항을 적고 상담실장에게 말했다. “의뢰서 써드릴 테니까 가족분들에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대학병원으로 리퍼해주세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쁜 오전 진료가 끝나고 점심을 먹다가 문득 그 환자가 생각났다. 아, 상담실장이 그분을 잘 설득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말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원장님, 그 환자는 ‘무연고’ 환자예요.” “네?” “이전에도 병원에 몇 번 왔었어요. 그런데 혼자 사시고, 연락하는 가족도 아무도 없더라고요.” “아…….” “돈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까 치료를 못 받는 거죠.”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상태가 심각한데요. 빨리 큰 병원에 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몇 번 다시 전화했는데도 환자분이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사실 내가 일하는 곳은 내원 환자의 평균 연령이 60~70대에 가까운 시골 치과다. 그래서 이런 노인 환자들을 만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무연고 환자’라는 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연고. 이 단어는 가족이나 친척 등 혈연관계가 없다는 뜻만은 아니다. 어딘가에 가족이 살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에게 연락할 사람이 없고, 아플 때 데려다줄 사람이 없고, 치료가 필요할 때 대신 결정해 줄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순간, 내가 좀 더 설득했었어야 했나 싶어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계속 전화해 보세요.” 그 말 밖에는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그날 그렇게 무연고 환자를 만나며 나는 김완 작가의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를 떠올렸다. 특수청소부인 저자는 혼자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집을 청소한다.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가난해지면 필연적으로 더 고독해지는가?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보다. 옆집에서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의아하게 여긴 이웃 신고로 주검은 뒤늦게 발견되고 경찰은 그제야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 유족을 찾아 나선다.” 어쩌면 ‘고독사’는 죽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죽기 훨씬 전부터, 이렇게 병에 걸리면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족과 멀어지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느슨해진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앞으로는 내가 만났던 이런 ‘무연고 환자’도,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도 지금보다 훨씬 흔해질지 모른다. 아픈데도 돌봐줄 사람이 없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사람이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세상. 그래서인지 그날 진료실에서 만난 한 남자의 얼굴이 자꾸만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혼자 아프고, 혼자 죽는 것까지 당연시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안부를 묻고, 한 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별일 없는지 살피는 아주 작은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마지막 끈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쩌면 고독사는 고독하게 병을 앓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독병’이 ‘고독사’로 이어지지 않기를. 그날 만났던 그 남자가 무사히 치료를 받았기를, 그렇게 바란다.

이가영 기자 young@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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