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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신문 논단] 미란다 프리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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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논설위원

“15분 후 이 책상에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우리 쌍둥이 딸들이 볼 ‘해리포터’ manuscript (출판 전 원고)를 오늘 저녁까지 구해오지 못하면 사무실로 돌아올 필요 없어!”라며 초짜 비서 안드레아(앤 해서웨이扮)를 닦달하던 유력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扮)가 딱 20년이 지나, 속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로 돌아왔다.

 

필자는 지나친 명품 선호나 패션몰입 취향이 아니라 이런 류의 영화를 잘 안 보는데, 케이블TV에서 우연히 본 전편의 여러 부분에 따뜻한 인간미가 담긴 장면과 대사들이 좋은 기억을 남겨준 영화였던지라 속편을 보았다. 전편의 주연급 배우들이 거의 그대로 출연했다 하여 그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20년 세월 속에서 변했을 모습과 달라졌을 연기에 대한 기대, 전편에 이어 속편에서도 메가폰을 잡은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이 지난 20여 년간의 변화된 시대의 감각과 정서를 어떻게 해석하고 같은 배우들을 통해 담아냈는 지도 궁금했다.

 

쓸데없이 미란다의 M.Benz 전용차량이 S-class 8세대였던 것이 속편에선 Maybach 2세대로 바뀌었다든가, 동양인 배우의 인종차별적 설정 부분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영화 밖 평단에서 이어진다든가 하는 영화 관련 가십류의 얘기들도 재밋거리라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그런 것보다 누구도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는 것이고, 그 세월 속에서 쌓은 노력으로 성장한 연기의 깊이와 직업적 성취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모습이 반가웠다.

 

그중 가장 궁금했던 것은 ‘미란다가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했을까’였다. 예컨대 20년 전엔 사무실에 들어서며 적절한 타이밍에 자기 코트와 백을 받아주지 않으면 아무 데나 던져버리던 그녀의 나이가 훨씬 더 든 지금, 스스로 사무실 구석 옷장에 낑낑대며 까치발로 자기 코트를 거는 장면과, 출장 시 늘 상급비행좌석만을 누리다 회사의 구조조정기간 중 떠난 출장의 이코노미좌석 비행에서 샴페인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설정, 또 예전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그녀의 ‘어나운스먼트’를 이번 속편에서의 비서는 아무 때나 끼어들어 사용어휘를 조심하라는 지적을 당하고도 참아내는 장면들은 20년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2003년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로렌 와이스버거(1977~)는 미국 코넬대출신의 유대계 미국 여성작가다. 그녀는 대표적 글로벌 패션잡지인 ‘VOGUE’誌의 미국, 영국 편집장을 지낸 안나 윈투어(1949~)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패션산업계의 삭막하고 냉엄한 현장을 고스란히 원작에 담아내지만, 그것을 고발하려는 의도보다는 부정적 이면에서도 지켜가야 할 소중한 것들과 몸담은 일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태도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미란다가 편집의 큰 방향을 정해주면 전편에선 연필, 속편에선 돋보기를 들고 섬세하게 콘텐츠를 다듬고 완성하는 집사같은 나이젤(스탠리 투치扮)은 속편에서 ‘이제 패션잡지를 지류로 사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로 업계의 위기를 단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헐값과 대량소비를 지향하는 디지털과 AI의 시대에 섬세한 감각과 장인정신을 본질로 하는 분야가 겪는 어려움을 공감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지류잡지인 ‘런웨이’誌가 버티는 힘은 미란다에서 나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미란다는 안드레아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고, 나이젤도 한 때 이용하고 배신한 듯하지만, 결국 그들은 알게 된다. 미란다가 그들이 사랑하고 함께 일하는 터전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악역을 자처했던 리더이자 아군이었음을…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을 받으며 미란다 같은 선배들과 스승님들께 ‘당했던’ 그 모든 당황스러움과 고통의 순간들이 우리를 성장하게 했던 시간이었음을 점점 더 깨달아간다. 당황과 고통이 주는 적당한 긴장은 우리의 생명력을 자극했고, 새로운 문제를 넘어서려는 의지와 인내가 스스로 안에 있음을 알게 했다. 그 여정 속에서 학습과 성취의 기쁨을 배웠고, 무엇보다 컸던 것은 나 자신이 턱없이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 겸손해지려는 마음이라는 귀한 선물이었다. 당연한 쾌적과 안락이 주어지는 이 시대도 좋은 듯하지만, 미란다 프리슬리 같은 악인연(然)하는 선배들과 스승님들이 계셨던 예전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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