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즉, 모순 투성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으니, 그건 내가 아직도 치과의사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한국 고등학생이 그러하듯 대학을 정할 때는 보통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거창한 사명감이나 숭고한 꿈, 혹은 낭만 가득한 마음이 과연 존재할 여유가 있을까. 나 또한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해맑은 아이였다.
성적에 맞춰 원서를 썼을 뿐이다. 사실 재수 시절 내내 목표는 약대였다. 그런데 어라? 막상 수능을 보고 나니 점수가 남았다. (어떡하지) 잠깐 의대도 고민했다. (이런 고민하는 사람 또 있었을까?) 하지만 당시의 내게 레지던트까지 이어지는 시간은 너무 길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무려 11년. 스물다섯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그 시절에, 서른 넘어서까지 수련이라니. “그건 좀…” 싶었다. 그런데 인생은 역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다. 내가 결국 보존과 전문의까지 따게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인생은 앞뒤가 잘 안 맞는다. 모순 투성이다.
어쨌든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 2002년, 나는 치과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히는 예과 1학년 2학기 석고 카빙 실습 시간. 깊은 절망감을 경험하게 된다. “맙소사, 진짜 큰일 났다. 이렇게까지 내 적성이 아니라니!” 사실 요즘같이 정보가 많은 세상이라면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마치 운명에게 제대로 속아버린 기분이었다.
첫 번째 충격은, 내가 생각보다 훨씬 손재주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두 번째 충격은, 치과진료의 거의 모든 과정이 오른손 중심이라는 사실이었다. (난 찐 왼손잡이다) 남들은 능숙하게 소구치와 제1대구치를 깎아내는데, 내 손끝에서는 도무지 치아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만 탄생했다. 손은 느렸고, 감각은 둔했고, 실습 시간은 늘 긴장과 불안의 연속, 보강은 거의 일상이었다. 그러니까 천국을 기대하며 들어왔는데, 눈 떠보니 그곳은 그저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생존 게임에 가까웠던 것.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손재주, 곰손만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부터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다. 작은 실수 하나도 쉽게 넘기지 못했고, 늘 스스로 몰아붙였다. 거기에 더해 환자와 자연스럽게 눈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내성적인 성격, 진료 결과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흔들리는 예민함까지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치과의사로 살아가기에는 꽤 피곤한 인간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18년 동안 치과의사로 슬기롭게 살아남았을까. 그 비밀은 역시 독서에 있다. 책은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생존 도구였다. 지적 허영심도 아니었고 단순 재미를 위한 활동도 아니었다. 분명 나는 이것 없이는 치과의사의 삶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진료가 끝난 밤이면 나는 자주 책 속으로 도망쳤다. 소설 속 인물들의 불안과 방황을 읽으며 ‘나만 이렇게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를 깨닫게 되었고, 인문학과 뇌과학은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건네주었다.
특히 무엇보다 책은 내게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세상이 정해준 길만 따라가며 살던 내게, 삶의 방향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내게 책은 늘 조용히 물었다. 다그쳤다. “정말 이게 네가 원하던 삶이 맞는가?”라고.
세상에는 당연한 길, 당연한 삶은 없다. 우리는 늘 지금 이 자리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다.
좋은 책은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과 용기를 건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주장하고 싶다. 권하고 싶다. 지금 내 삶이 버겁고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특히 치과의사로서 길을 잃었다고 느껴진다면, 우선 좋은 책 한 권부터 펼쳐보라고.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실제로 내 삶을 버티게 해줬던 책들을 한 권씩 소개해 보려고 한다. 치과의사라는 고단한 직업 속에서도 조금은 덜 불안하고,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기특한 책들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