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보다 보면, 역사에서 금해야 하는 ‘만약’이란 단어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최근 흥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처럼 세조가 쿠데타를 하지 않고 단종이 지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급격한 왕권 약화로 또 한 번 역성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새 왕조는 개화기 때 일본 메이지 유신처럼 개방하여 일제 강점기가 없었을까. 인조반정 후에 논공행상에서 이괄에게 일등공신을 부여하였다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없었을 것인가. 인조반정의 군사 총지휘자였던 이괄이 이등공신이 되면서 불만이 생겼고, 이괄은 국경 군사로 반란을 하여 국방 수비가 허물어졌다. 패한 반란 잔당이 후금으로 도망치고, 그들이 인조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청의 앞잡이가 되어 침략을 충동하며 정묘호란이 발생하였다. 만약 이괄에게 일등공신을 주었다면 정묘호란은 없었을 것인가. 역사의 한 시점에서 변화가 모든 것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 시점을 잘 잡는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란 드라마는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분당 땅 투기, IMF 등 미래 예측 등으로 돈을 버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처럼 개인에게도 ‘만약에’란 단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년 전이라면 비트코인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6개월 전이라면 삼성과 SK의 주식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심리학에서 지나온 과거를 생각하면 후회하게 되고 후회는 우울로 이어진다. 역사에서 벌어진 일들은 단지 기록으로 남지만, 개인의 선택은 시간이 지나서 후회로 남고, 그것이 심해지거나 몰입되면 우울로 이어진다. 심리학에 ‘과거에 대한 생각은 우울을 만들고, 미래에 대한 생각은 불안을 유발한다’는 말이 있다.
최근 주식시장에 변동성이 매우 크다. 한 번의 선택으로 큰돈을 벌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이럴 때는 번 사람도 잃은 사람도 모두 후회가 크다. 번 사람은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후회다. 1천만원이 아닌 1억원을 넣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다. 놓친 물고기는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잃은 사람은 모든 것이 후회다. 이런 시기에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짜증이 많아진다. 치과 외래에서 환자들이 짜증을 내는 경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지기도 한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크면 1억원을 넣었을 때 하루에 수백만원이 오르고 내린다. 자신의 월급이 하루에 오르고 내리는 것이다. 과연 일에 집중이 될 것이며, 밤에 잠이 올 것인가. 매일 밤 ‘만약에’를 붙들고 있다 보면 다음 날 하루를 모두 주식시장이 잠식해버린다. 오르면 기뻐하고 내리면 짜증을 낸다. ‘그때 팔았더라면’, ‘그때 샀더라면’이라는 부질없는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과거라는 늪에 빠져 서서히 우울로 침잠한다.
지나간 선택을 복기하는 것은 이성적인 성찰이 아니라 대부분은 스스로를 향한 가학적인 비난으로 끝나기 쉽다. 요즘이 그런 때다. 이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만약에’에는 두 가지 결과가 있다.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흐름은 바꾸지 못하고 이벤트로만 끝나는 경우다. 만약 이괄에게 일등 공신의 지위를 주어 정묘호란은 없었다고 한들 과연 침략이 없었을까. 신흥 강자로 떠오르던 후금의 팽창 세력과 숭명배금(崇明排金)이라는 명분론에 갇혀 있던 조선에 새로운 침략이 없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가끔 SNS에 주식으로 20억원을 벌어서 직장을 그만둔다는 글들이 보인다. 과연 20억원으로 90세 이상을 살아야 하는 요즘, 그는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최근 주식으로 70억원을 벌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린다. 10년 전에도 비트코인이 오르면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잃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냥 사라진다. 모임에 나오지 않으며 기억에서 사라진다. 경제적 손실이 생활 패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이렇게 변동성이 큰 때에 심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적 회복탄력성이다. 상실을 견디고 원래로 회복하는 힘이다. 쉽지 않지만 지나간 버스를 잊고 새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세상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회복탄력성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벗어나서는 안 된다. 삶은 도박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