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치과의사로서 역사의 길목마다 ‘지조와 책무’를 다했던 위인들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한국 치과의사 역사와 세계사 속에서 빛난 치과의사 영웅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금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국 치과의사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함석태(咸錫泰, 1889~미상) 선생은 넓은 의미에서 민족의 얼을 지킨 우국지사(憂國志士)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1912년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서울 삼각정(현재 을지로 입구 근처)에 한국인 최초로 치과의원을 개원한 ‘대한민국 치과의사 1호’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걸어간 길은 일제의 압제 속에서 ‘조선의 자존심과 문화’를 지킨 비폭력 민족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1919년 서울역에서 신임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한 강우규 의사가 순국한 후, 선생은 일제의 감시를 무릅쓰고 강 의사의 손녀딸 강영재 여사를 친딸처럼 거둬 양육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투옥과 고문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을 때는 직접 의치를 제작해 주며 독립운동가들의 건강을 은밀히 돌보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선생은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파괴하고 반출하는 것에 격분하여 사재를 털어 고미술품과 문화재를 수집했다. 1923년 전차 노선 부설 공사로 철거되던 경복궁 ‘서십자각’의 대문짝을 직접 매입하여 사저의 대문으로 삼아 보존했고, 일제의 도시 계획으로 훼손될 위기에 처했던 고종황제 칭경기념비전의 철제문을 사재로 지켜내기도 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수호의 상징인 간송 전형필 선생에 버금가는 ‘문화 독립운동’이자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실천이었다.
나아가 1925년에는 일본인 치과의사 위주로 운영되던 조선치과의사회에 맞서 한국인 치과의사들을 결속해 ‘한성치과의사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우리 민족 치과의사들의 권익을 지키고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이 거사는 100년의 시간이 흐른 바로 지난 2025년, 서울시치과의사회 창립 100주년 기념의 자랑스러운 뿌리가 됐다.
한편, 세계사 속에서 국가와 국민, 그리고 환자를 지키기 위해 위대한 희생을 한 대표적인 치과의사 위인으로는 미국의 벤자민 살로몬(Benjamin L. Salomon, 1914~1944) 대위를 꼽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7월 7일, 사이판 전투 당시 미 육군 제27보병사단 소속 치과군의관인 살로몬 대위는 최전방 야전병원(전방 참호에서 불과 45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이때 3,000~5,000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대규모 반자이 돌격(자살 돌격)을 감행하면서 야전병원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제네바 협정상 의무관은 공격 목적으로 무기를 들 수 없었으나, 살로몬 대위는 “부상 환자들이 몰살당하게 둘 수 없다”는 신념으로 총을 들고 부상병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린 뒤, 홀로 전방에 남아 기관총을 잡고 밀려오는 적들을 막아냈다.
마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는 극한 상황 속에서, 전선이 정리된 후 발견된 살로몬 대위의 시신에는 수십 발의 총탄과 자창 자국이 선명했다. 그러나 그의 기관총 진지 바로 앞에는 그가 홀로 막아낸 98구의 일본군 시신이 쌓여 있었다. 이 초인적인 저항 덕분에 수많은 미군 부상병들이 후방으로 안전하게 이송될 수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환자를 보호하겠다는 ‘의료인으로서의 서약’과 군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는 사후 오랜 심사를 거쳐 2002년 미국 군인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 받았다.
함석태 선생의 삶과 살로몬 대위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오늘날 우리가 깊이 기억해야 할 ‘전문가적 지위와 사회적 책무의 결합’을 의미한다. 의료를 행하는 전문가가 단순한 의료 기술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지식과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완성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위기 앞에서 빛났던 선배 치과의사들의 용기와 지조를 본받아 오늘날 우리 치과계가 지향해야 할 전문 직업성(professionalism)과 자정 노력이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