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 시장이 9,000선을 넘나들며 전례 없는 호황과 극심한 변동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매일 밤낮으로 화면 속 빨간색과 파란색 그래프가 춤을 출 때,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요동친다. 이런 거대한 돈의 흐름은 개인의 일상을 흔들어 놓기 충분하다. 하루에 수 백만원이 오르고 내리면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주식 그래프와 수익만 수시로 체크하게 된다. 심지어 빚투가 극심한 지경에 이르러 주식이 투자라기보다는 투기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원래 주식은 이런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업의 위험 분산과 자본의 대중화로 시작되었다. 주식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금융 공학의 정교한 계산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500여 년 전 유럽 한 나라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의 나비효과에서 비롯되었다. 1492년 스페인에서 알람브라 칙령(유대인 추방령)이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며 국토회복운동을 완성한 스페인 왕정은 가톨릭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원했다. 왕정은 바로 스페인 영토 내의 모든 유대인에게 4개월 안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나라를 떠나라고 명령하였다.
왕정의 눈에 유대인은 가톨릭 제국의 순수성을 해치는 불순물이자, 쫓아내도 그만인 외지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로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스페인의 금융, 상업, 의학, 행정 등 경제와 지식의 중추를 지탱하던 핵심 인재들이었다. 이들이 전 재산을 헐값에 매각하고 네덜란드, 영국 런던, 오스만 제국 등으로 쫓겨났다. 그 후 스페인의 경제적 혈맥은 순식간에 끊어지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반면, 이들을 포용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전 세계 금융과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스페인을 떠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둥지를 튼 유대인들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모색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국토 절반이 바다보다 낮은 척박한 땅이었지만, 이들은 북해의 청어잡이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유대인 자본과 유통망이 결합하면서 네덜란드 청어 무역은 유럽 전역을 장악하며 거대한 부의 원천을 이루었다. 청어 무역으로 거대한 자본을 축적한 네덜란드는 눈을 아시아 향신료 무역과 금은 교역으로 돌렸다.
당시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교역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했다. 하지만 리스크가 문제였다. 당시 기술로 아시아까지 배를 보내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거나, 해적을 만나 약탈당하면 투자한 상인과 귀족들은 단 한 번에 파산했다. 위험이 너무 크다 보니 아무리 돈이 많은 자본가라도 선뜻 단독 투자를 감행하기 어려웠다. 이때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1602년, 여러 무역회사가 하나로 뭉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했다. 그리고 회사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자본가 몇 명의 돈을 빌리는 대신 일반 시민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에게 투자금을 쪼개 유치하는 방법을 시도하였다. 그 대가로 투자 비율이 적힌 종이 증서를 나눠주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주식(Stock)’이다. 사업의 위험 분산과 자본의 대중화가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1602년,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개장되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모여 주식 가치를 매기고 거래하는 현대적 의미의 주식 시장이 완성되며 돈이 몰리고 중앙은행이 탄생하였다. 이 시스템 덕분에 네덜란드는 일개 작은 강소국에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무역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역사적 이벤트로 탄생한 주식은 현대 경제시스템의 근간이 되었다. 주식은 투자금에 대한 파산 불안심리에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시스템이다. 투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주식의 본질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분산하고, 신용을 바탕으로 다수의 자본을 모아 혼자서는 불가능한 거대한 가치를 창조하는 시스템’이다.
지금 우리 주식 시장은 너무 급격하다. 자칫 과도한 손실은 심한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변동성이 심한 이때 주식의 본질을 기억해야 한다. 미래의 안전을 대비한 것이라면 볼 필요도 없이 마음 든든하지만, 가까운 금전적 이익을 바란다면 수시로 마음은 늘 불안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