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차례 음식준비로 바쁠 때지만, 이번 추석부터는 간소화하기로 정해서 차분하다.
사실 추석과 설날에 지내는 차례는 유교 문화가 아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불교의 다례식에서 유래되었다. 인도에서 신에게 향과 청정수 등 공양물을 올리는 문화가 불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졌고 당시 중국에서 차가 매우 귀하였기 때문에 차를 올리게 되었다. 이런 중국불교가 신라로 들어오면서 다례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민간 풍습이 되었다. ‘다례’란 가장 귀한 차를 높으신 분에게 대접하는 의미다. 가장 높은 부처님부터 스승님에게 혹은 돌아가신 분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행위였다. 이런 풍습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해도 바꾸지 않았다. 고려 불교 대신 유교를 국교로 하면서 불교 풍습을 유교적으로 재해석하며 차례로 바뀌게 되었다.
유교에는 절대신이 없다. 조상님이 절대신적인 역할을 한다. 불교는 사람이 죽으면 윤회를 하는 개념이지만, 유교는 돌아가시면 육체만 없는 것이지 혼은 자손 곁에 머문다. 따라서 집집마다 사당을 짓고 위패를 만들어 혼이 머물 장소를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사당을 만들 것을 수없이 어명으로 요구하였으나 100년이 지난 성종 때 되어서 유교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아마도 이때쯤에 지금 형태의 차례문화도 성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유교는 원래 제사문화다. 유교에서 제사란 육체가 없는 조상의 혼이 돌아가신 날에 오셔서 고기음식을 드시고 가시게 하는 행위로 매우 중요한 종교 행사다. 유교적 개념에서 혼은 유일하게 죽은 날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따라서 명절에는 혼이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제사는 혼이 올 수 있게 밤에 지내고, 차례를 낮에 지내는 자체가 혼이 못 오신다는 것을 전재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선 유교가 택한 것은 불교적 풍습에 유교적 행위를 섞어서 조상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는 행위로 남겨둔 것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제사와 차례 방법의 절차가 비슷하다 보니 구분을 못하게 되었고 그냥 하던 일이니 하는 것으로 되었다. 차례도 원래 다례에서 기원하여 술이 아닌 차를 올렸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차가 매우 귀했고 차나무에 세금이 너무 많아서 차를 재배하지 않게 되면서 더욱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런 이유로 슬그머니 언제부터인가 구하기 쉬운 술로 대체되었다. 그래도 이름은 유지되어 차례로 내려온 것이 오늘날 명절 차례문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추석에는 조상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설날에는 조상님 앞에서 한해를 맞이하는 다짐을 하는 날이 명절이다. 이런 이유로 올해부터는 추석을 원래 조선시대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하였다. 성균관 표준 차례상은 제사상과 확연히 다르다. 표준 차례상에 따르면 별로 상차림이 어렵지 않다. 차례상은 차가 주메뉴고 음식은 차에 따른 부메뉴 개념이다. 제사상은 고기가 주메뉴고 술이 부메뉴가 된다. 결국 개념적으로 차례상이 상다리가 부러질 이유가 없다.
유교문화와 불교문화가 혼재된 것 중에 장례문화가 있다. 불교적 개념은 윤회를 하기 때문에 육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화장을 하면 된다. 하지만 유교는 혼은 떠나지 않기 때문에 머무를 장소(백)가 필요해서 반드시 매장을 해야 한다. 유교적 논리는 혼백에서 정신인 혼은 하늘로 육체인 백은 땅으로 가서 서로 교감을 하는 것인데 화장을 하면 백이 사라지며 떠돌이 혼이 된다는 개념이다. 이렇듯 아직도 불교 개념과 유교개념이 혼재된 상태에서, 지금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냥 전통이다. 최근엔 매장보다 화장이 많아지는 것도 시대에 따른 흐름이다. 수천 년 전에 시작된 다례식이 지금도 차례문화로 남아있으니 조선시대 형태로 복원하여 간소화하는 것도 시대문화다.
뉴스를 보면 아직도 차례나 제사가 집안의 분란 거리가 된다는 기사가 보인다. 시대가 변했으니 조선왕조가 100년에 걸쳐 만들려고 노력했던 유교 제사문화도, 인도 불교문화 잔재인 차례문화도 바뀌는 것이 정상이다. 문화는 차가 술로 바뀌듯이 환경에 따라 바뀌기에 문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