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사들고 나오곤 한다. 얼마 전, 언제 맡아도 기분 좋은 종이 냄새 가득한 서점 한켠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법의학의 대가인 서울대 의대 유성호 교수의 저서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책장을 넘기며 치과의사로서 마주하는 나의 일상 역시 법의학자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저자는 법의학자를 ‘죽은 자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읽어내어 삶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며, 각 장기의 상태를 통해 고인의 삶을 유추하고, 남은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법의학자가 훼손되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 앞에서 그가 누구였으며 어떻게 살다 갔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다면, 치과의사는 매일 진료실에서 치아와 임상 기록을 보며 한 사람이 걸어온 삶의 흔적을 고민하고 그 상처를 보듬고자 노력한다. 비록 살아있는 인간을 대한다는 점은 다르지만, 치과의사 역시 환자의 구강이라는 수많은 내용을 담은 ‘텍스트’를 읽어내는 관찰자이자 기록자인 것이다. 유니트체어의 라이트를 켜고 환자의 입안을 들
도서관에서 ‘치과의사’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걸작이 있다. 바로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이다. ‘슈렉’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저자가 1982년 발간한 이 작품은 뉴베리상 아너(Honor, 우수상)를 수상하며 아동문학의 고전이 됐다. 실력파 생쥐 치과의사인 드소토 선생님은 아내와 함께 작은 동물부터 큰 동물까지 정성껏 치료하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다. ‘생쥐에게 위험한 포식자는 치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치통을 견디다 못한 여우가 찾아오고, 드소토 부부는 고민 끝에 여우를 치료해 주기로 한다. 그러나 나쁜 충치를 없애는 치료가 끝나자 여우는 본색을 드러낸다. 이때 부부는 미리 준비한 ‘치과적 기지’를 발휘해 여우의 입을 단단히 붙여 버림으로써 위기를 모면한다. 도르래와 사다리를 이용해 거대 동물의 입속을 누비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친절을 베풀되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대비책을 가져야 한다는 대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소 필자는 소설을 읽으며 진료실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현실의 각박함에서 벗어난다. 특히 미스터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즐겨 읽는데, 2018년 작 ‘
2004년 무통분만 사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역사에서 단순한 수가 갈등이 아니었다.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의료를 통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보험의 원칙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건이었다. 100분의 100 제도는 환자는 진료비 전액을 부담했지만, 보험자는 비용을 한 푼도 부담하지 않으면서 가격만 통제하는 구조였다. 당시 정부는 결국 ‘100분의 100 전액본인부담제도’를 폐지했다. 이유는 보험자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의료만 통제하는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순은 무통분만에서 폭발했다. 당시 책정된 수가는 마취과 전문의를 초빙하는 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의료기관은 실제 비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심사평가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의료기관은 적자를 감수하거나 진료를 중단해야 했고, 전국적인 무통분만 거부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의료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외면한 가격통제가 의료공급을 무너뜨린 정책 실패였고, 우리에게 보험은 부담과 통제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기게 되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선별급여를 거쳐 2026년 시행된 관리급여는 환자가
‘리액션이 좋은 사람에게 은총을 더 빨리 주신다’는 글귀를 필자가 다니는 성당의 주보에서 본 적이 있다. 의료 현장에서도 환자의 긍정적인 반응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을 넘어, 실제 치료의 질과 안전성에 기여한다는 연구와 심리학적 근거들이 존재한다. 심리학과 의학계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협력 관계를 ‘치료 동맹(therapeutic alliance)’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환자가 감사 인사를 하거나 치료 과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의사는 무의식적으로 더 높은 책임감과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즉, 환자의 리액션이 의사에게 ‘전문가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이는 의사의 번아웃(burnout)을 방지하고 진료의 세심함을 높이는 선순환의 연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과학적 실체는 하버드 의대의 테드 캡척(Ted Kaptchuk) 교수 연구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플라세보(placebo) 효과의 세계적 권위자로, 특히 과민성 대장 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단순히 위약을 처방하는 것을 넘어, 의료진이 환자의 눈을 맞추고 질문에 경청하
어디서 나온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나 술자가 치과보철물을 10년 넘게 편안히 쓰고 있으면 잘 된 것이라고 만족스러워한다. 무릇 1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여러 의미를 담아내나 보다.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어느 날이었다. 당시 일흔 중반이 넘으셨던 지인의 모친이 임플란트는 무서워 절대 하기싫다 하시어 수개월에 걸친 상하악 가철성보철치료를 마무리할 때 쯤이었다. “김 원장! 이거 나 죽을 때까지 또 손 안 봐도 되게 잘 해준 거지?”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했다. 그간 조금 친해진 사이라, 눈을 가늘게 뜨며 “어머니, 몇 년쯤 더 사실건데요?”라고 물었더니 필자의 안경에 침방울이 튀도록 웃어젖히시고 나선, “딱 10년만 더 살고 갈거야..”라며 일어나시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지급한, 그리고 지급할 상여금에 대해 각종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각이 공유되었다. 수억원이 넘는 상여금이 ‘부족해서 부당하다’는 측과 ‘과다해서 부당’하다는 측의 이견과 갈등 중에, 상여금이 없는 기업과 심지어 급여가 체불된 기업이나 문을 닫는 기업의 사주와 사원들에겐 이 소란은 어떤 느낌으로 다
개원 22년 차인 필자는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음악을 튼다. 클래식이나 세미 클래식, 그중에서도 주로 피아노 연주가 주를 이루는 비언어적 음악(non-verbal music)이다. 진료에 온전히 전념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핸드피스의 날카로운 고주파 소음과 석션 소리가 가득한 치과 환경에서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진정 효과(soothing effect)를 전하고 싶어서다. 과연 어떤 음악이 환자와 술자 모두에게 깊은 안식을 줄 수 있을까? 치과 소음은 대개 60~80dB 사이의 고주파로 구성된다. 이는 뇌의 편도체를 자극하여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 분비를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 이를 상쇄하기 위한 사운드 테라피의 핵심 원리는 ‘청각 마스킹(auditory masking)’과 ‘템포와 심박수의 동기화(entrainment)’에 있다. ‘청각 마스킹’이란 단순히 소음을 소리로 덮는 것이 아니라, 배경 음악을 통해 날카로운 기계 소음에 집중된 뇌의 인지적 관심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말한다. 이때 가사가 있는 음악은 언어를 처리하는 뇌 기능을 추가로 사용하게 만들어 오히려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가사가 없는 비언어적 음악(instrum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애송했던 서산대사(이양연)의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제34대 치협 회장단 선거가 끝난 직후, 직무정지 가처분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회무의 시계가 멈춰버린 치과계의 씁쓸한 현실 앞에서 이 경구를 다시금 무겁게 되새기게 된다. 치과계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지금 저 눈 덮인 들판 위에 과연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란 치과계에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새 일꾼을 뽑는 축제의 장이자, 3만 회원의 준엄한 민의를 확인하는 최고 권위의 민주적 과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소송전으로 이어져 치협을 혼란의 늪에 빠뜨렸던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다. 시계를 잠시 지난 2020년, 제31대 협회장 선거 당시로 되돌려보자. 당시 한 후보 측은 선거 과정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법적 소송은 가지 않겠다”고 회원들 앞에서 공언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치과의사로서 역사의 길목마다 ‘지조와 책무’를 다했던 위인들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한국 치과의사 역사와 세계사 속에서 빛난 치과의사 영웅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금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국 치과의사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함석태(咸錫泰, 1889~미상) 선생은 넓은 의미에서 민족의 얼을 지킨 우국지사(憂國志士)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1912년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서울 삼각정(현재 을지로 입구 근처)에 한국인 최초로 치과의원을 개원한 ‘대한민국 치과의사 1호’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걸어간 길은 일제의 압제 속에서 ‘조선의 자존심과 문화’를 지킨 비폭력 민족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1919년 서울역에서 신임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한 강우규 의사가 순국한 후, 선생은 일제의 감시를 무릅쓰고 강 의사의 손녀딸 강영재 여사를 친딸처럼 거둬 양육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투옥과 고문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을 때는 직접 의치를 제작해 주며 독립운동가들의 건강을 은밀히 돌보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선생은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파괴하고 반출하는 것
작금(昨今)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또다시 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이어가고 있다. 직선제 도입 이후 소송이 끊이지 않은 치협이지만, 회장단이 공식 취임도 하기 전에 당선인 신분으로 직무가 정지된 건 초유의 사태다. 치협은 또 한 번 혼란에 휩싸여 있고,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회원과 치과계를 대표하는 회무는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임기 시작 하루 전인 지난 4월 30일 회장 당선인과 부회장 당선인 3인의 직무가 정지됐고, 치협 34대 집행부는 직무가 정지된 선출직 회장단을 제외한 임원 중심으로 임시이사회를 개최하는 등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앞서 지난 4월 25일 신임 집행부 임원 33인의 명단을 대의원총회에 제출해 승인받았다. 그러나 정작 회원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회장단은 회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회원을 대표해 대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치협 ‘회장’과 ‘회장 직무대행’의 대외적 위상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당장 산적해 있는 치과계 현안이 너무나 시급한데 속이 타들어 가는 회원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무엇보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 자체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2026년 5월 대한민국은 ‘사과(謝過)’라
“투표용지가 없어서 투표를 못 한다”, “피부과라고 해서 왔는데 피부 질환 치료를 못 받는다” 최근 보도된 이 충격적인 뉴스들을 접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참담함을 느꼈다. 간혹 치과에 내원한 환자가 기본적인 검진을 위한 방사선 촬영을 거부할 때, 필자가 가벼운 어조로 건네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무기 없이 나가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했던 비유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현실이 된 것이다. 지난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의료 현장의 본질을 잃어버린 진료 편중 현상은 각 분야가 마땅히 갖춰야 할 핵심 기능과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뼈아픈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주주의사회에서 투표용지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원이다. 물론 선거 관리 부실이나 수요 예측 실패로 투표용지가 바닥나 유권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투표를 포기해야 했던 전대미문의 사례가 세계 역사상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일부 주와 자치구 선거(2022~2024년)에서 팬데믹 발 공급망 붕괴로 투표용지 배송이 지연되어 선거가 파행을 겪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최근 치과계는 불법의료광고를 통해 초저수가 덤핑 진료비를 내세워 환자를 대량 모집해 공장형으로 운영하는 불법덤핑치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경영 방식은 결국은 치과의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진료량을 무리하게 소화하는 상황이 돼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법적으로 반드시 치과의사가 행해야 하는 마취, 치아삭제, 영구충전, 구내 교합조정 등을 불법적으로 위임하는 비윤리적인 진료 행태까지 나타나며 이러한 부실진료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일부 불법의료기관의 덤핑광고가 온라인과 SNS광고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성실하게 진료하는 대다수 치과의사들이 역으로 오해받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의료인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만큼,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성과 전문성은 그 어느 직역보다 엄격할 수밖에 없다. 치과계 내부의 위법 행위를 스스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결국 외부의 강한 규제와 사회적 통제를 초래하게 된다. 필자는 제33대 대한치과의사협회 법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의료법 위반 치과 신고센터’ 설립에 참여해 불법 의료광고, 사무장치과, 불법 위임진료 등에 대한 신고를 회원과 국민으로부터 직접 접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의 서막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다시금 뜨거운 축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대표팀의 전력을 두고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지금, 축구 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캡틴’ 손흥민 선수의 발끝으로 향한다. 돌이켜보면 손흥민 선수가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을 터뜨린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푸스카스상’을 거머쥐었을 때, 우리는 그 이름의 주인인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as)와 대한민국 사이에 흐르는 깊고도 끈끈한 역사적 연결고리를 확인하며 묘한 감동을 느낀 바 있다. 1950년대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던 ‘매직 마자르(Magical Magyars)’ 헝가리의 중심에는 늘 푸스카스가 있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던 순간은 전설적인 전성기의 서막에 불과했다. 군 소속 팀인 혼베드에서 활약하며 ‘질주하는 소령(the galloping major)’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비교적 단신임에도 전설적인 왼발 킥력을 자랑했다. 당시 헝가리 대표팀은 “어떤 팀을 만나도 경기 시작 10분 내에 2골을 넣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무시무시한 속전속결의 대명사였다. 실제로 그들
치과계에 직선제가 도입된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전체 회원의 뜻을 모으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대한치과의사협회 제30대 첫 직선제부터 최근 치러진 제34대 선거에 이르기까지, 안타깝게도 매 선거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가처분, 당선 무효 소송 등 법적 분쟁이 반복되고 있다. 매번 다른 인물이 후보로 나와도 비슷한 패턴의 갈등이 이어진다는 것은, 이것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무언가 시스템적인 문제 내지는 구조적 한계임을 시사한다.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 협상 사례를 참고해보자. 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을 해본다면, 이런 협상에서 대표는 일종의 주어진 역할을 해야하는 ‘연극성’의 요소가 있다. 현대차나 삼성전자 정도 되는 사이즈의 노사 교섭은 파업 직전의 극단적 대치 상황까지 가다가 마지막 날 새벽에야 극적 타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초기에 아무리 합리적인 조건이 제시되더라도 노측 대표든, 사측 대표든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 사측은 주주를 이해시켜야 하고, 노측은 조합원을 납득시켜야 한다. ‘너무 다 퍼준거 아닌가?’ ‘싸워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수긍한거 아닌가?’ 라는 질문은 협상 대표들을 위태롭게 만든다.
치과대학을 졸업한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69제(六九制)’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6월 9일이 ‘치아의 날’이자 ‘구강보건의 날’임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됐다. 2026년 제81회 구강보건의 날을 준비하는 서울시치과의사회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세계적인 구강보건의 날 운영 현황과 ‘6세 구치’ 개념의 보편성,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 뿌리내린 구강보건의 날의 변천사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6월 9일을 법정기념일인 ‘구강보건의 날’로 지키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날짜는 우리와 조금 다르다.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이 정한 공식 ‘세계 구강보건의 날(World Oral Health Day)’은 3월 20일이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수치적 의미가 담겨 있어서, 어린이들이 20개의 유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성인은 32개의 치아와 0개의 충치를 가져야 한다는 점(32 + 0 → 3/20)을 함의한다. 나아가 노년기에도 20개의 자연 치아를 유지해야 한다는 건강한 노후의 소망까지 투영돼 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은 2월을 ‘어린이 치아 건강의 달(National Children's Dental Health
최근 배달 플랫폼과 온라인 주문이 일상화되면서 소비자의 맞춤형 요구는 점점 세밀해지고 있다. “튀김옷을 1cm로 맞춰 주세요, 아니면 안 먹겠습니다”라는 식의 주문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특정 치수나 품질을 조건으로 삼고, 이를 충족하지 않으면 거부하거나 별점 테러를 하겠다는 식의 요구는 요청이 아니라 조건부 수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유사한 사례는 다양하다. “김밥의 단무지는 정확히 3개만 넣어 달라”, “짜장면의 면은 80g으로 맞추고 소스는 따로 담아달라”, “커피는 62도에서 제공하라”, “피자는 정확히 8등분이 아닌 7등분으로 잘라달라”와 같은 주문이 대표적이다. 일부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상당한 추가 노동이나 품질 저하를 수반하고, 일부는 아예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렵다. 특히 음식은 공정과 표준화가 중요한데, 이러한 요구는 시스템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이러한 요구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구분이 필요하다. 알레르기, 종교적 이유, 건강상의 제한 등은 합리적 배려를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재료를 빼달라는 요청은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 그러나 조리 공정 자체를 변경하거나, 측정 단위를 강제하는 요구는 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단순한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