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2015.07.20 15:39:12 제644호

즐거운 玄冬을 위해

매달 둘째 주 토요일이면 음악연주를 위해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기타로 이루어진 합주단이  낙원악기상가 4층 합주실을 찾곤 한다. 낙원동은 보통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이나 마시고, 바둑이나 장기 두는 사람들이 주로 눈에 띈다. 음식 값도 싸서 주변 음식점에는 고기를 듬뿍 얹은 돼지국밥이 5000원이면 두 사람이 먹어도 남을 만큼 푸짐하게 나온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젊은 시절의 무용담이나 옛 시절의 고향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한다던지 또는 그들의 전성시절의 향수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상가에는 영화관도 있는데 무료한 시간을 친구와 술 한잔하고 마지막으로 들르는 코스다. 입장료가 2000원이니 싸도 너무 싸다. 영화는 60, 70년대 인기 있었던 명화들이다. 나도 그들 나이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어쩐지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제3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왜 그런지, 아직도 현직에 있어서 그런지 그들의 문화나 생각을 바라보는 그저 객관적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이로 보나 문화적인 면으로 보나 나는 그들과 같은 인생에 속해있는 것이다.


우리는 길어야 100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인생의 시작인 10,20대, 인생의 절정인 30,40대, 인생이 무르익는 50.60대, 그리고 노쇠하기 시작하고, 남은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는 70대,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80,90대. 굳이 나눈다면 그렇게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대게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여, 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 인생을 시작하는 10,20대를 菁春(청춘)이라 하고, 활동이 절정에 이르는 혈기 왕성한 30,40대를 朱夏(주하)라 하고, 인생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는 50,60대를 白秋(백추) 또는 素秋(소추)라 하며, 은퇴하여 노후와 죽음을 준비하는 70,80대를 玄冬(현동)이라 한다. 나이를 뜻하는 말로 인생을 배우기 시작하는 10살을 幼學(유학), 관례를 치러 성인이 되는 나이인 20세는 弱冠(약관), 30세는 뜻을 세운다고 해 而立(이립), 40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여 不惑(불혹), 50세는 하늘의 뜻, 즉, 인생의 의미를 안다 해서 知天命(지천명), 60세는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順理(순리), 70세는 뜻을 행해도 道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從心(종심)이라고도 한다. 그 외에 77세를 喜壽(희수), 80세를 八旬(팔순), 88세를 米壽(미수), 90을 卒壽(졸수), 99세를 白壽(백수), 사람이 살 수 있는 한계의 나이인 120세를 天壽(천수)라 한다. 우리는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길어져 예전처럼 60세면 거의 수명을 다했다고 성대하게 환갑잔치를 하던 때는 지났다. 60세 전후에 은퇴해 평균수명인 80~90세까지의 인생을 영위해야할 특단의 계획이 필요할 때라 생각된다. 수입은 줄어들거나 없고, 몸은 병이 나고 몸은 늙어 자신 의지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세월이 흐르는 대로 무의미하게 죽을 날만 기다릴 수 없지 않는가?


사람은 성년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면 성공과 획득에 최선을 다한다. 사회적 우위의 위치에 있으려하고, 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려하고 남보다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지출도 많고, 2세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키워야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많이 지출될 수밖에 없다. 40~50대까지 모든 것을 이루려 하기 때문에 소신 있는 버림의 인생은 생각하기 어렵다. 버린다는 것은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이루기 위함이다. 60,70대가 되면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버림보다 얻는 것에 몰두한다면, 몸과 정신의 피로가 쌓이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얻는 것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잘 영위할 수 있을까?


답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노년이 되어 욕심을 버리는 것은 노년인생에서 첫 번째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라고 본다. 인생을 풍요롭게 이룬다는 것은 얻는 것이 많을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년의 설계는 재력만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다. 물론 노년을 영위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재력은 필요하겠지만, 노년의 정신세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늙으면 병은 친구처럼 따라온다. 이 병의 원인은 욕구불만과 상대적 가치에서 오는 좌절감이다. 어느 정도의 노년의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 다음에 생각해야할 것이 정신적 문화적인 면에, 자신이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족함을 아는 것이 즐거움이고 욕심이 커지면 근심이 일어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버림이 만족의 첫걸음이다.


욕심이 작아지면 그만큼 만족도가 커진다. 버릴 줄 알아야 욕심이 줄어든다. 즉, 족함을 아는 것이 넉넉함이다. 세계에서 제일 삶이 만족스럽다는 방글라데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이루려면 버려지는 것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인생사가 얻음과 버려짐의 연속이다.


산골짜기 농장에 수많은 양을 키우는 사람이 있었다. 가끔 늑대가 양을 잡아먹자, 사람들과 상의하여 양을 잡아먹은 늑대들을 죽여 버렸다. 그 후, 양들은 게을러져 비만이 됐고 병을 얻어 수많은 양이 죽었다고 한다. 얻기 위해서는 약간의 버림이 없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 버림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풍요로운 마음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즐거움이 있는 인생이어야 기쁨이 오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연주모임에 나오는 친구들은 70 나이에도 단편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연기에 몰두하고, 아코디언 연주에 열심인 친구는 생활이 부유하지 않아도 만나면 쾌활하고 즐거운 모습이다. 또 한 친구는 장애자를 돌보는 단체에 나가고, 하모니카에도 몰입하고 있다. 나도 역시 기타를 치는 그런 노년의 한사람이다. 기타, 하모니카, 아코디언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낙원상가 주변에서 우리의 육체는 늙었으나 젊은 마음을 항상 갖고 있는 그런 창조적 인생을 항상 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보았다. 오늘도 세 사람은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고 하나의 곡을 완성하고 있다. 즐거움과 기쁨이 솟아난다. 허름한 국밥집에 들려 막걸리에 국밥 한 그릇 먹다보면 옛날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나, 가벼운 미소가 입가에 흐른다. 친구가 복사해온 다음 달 악보를 서로 나눈다. 다음달 더욱 멋진 연주를 할 것을 다짐하며, 음을 흥얼거려 본다.


석양의 햇살이 내일의 즐거운 꿈을 꾸며 걷는 세 사람의 긴 그림자를 길 위에 새겨놓고 있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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