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2015.11.16 14:36:44 제659호

기태석 논설위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60을 갓 넘긴 친구끼리는 우리세대를 ‘낀 세대’라 한다. 위로는 부모님을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고, 아래로 자식에게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음세대가 될 것이라 한다. 개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40여 군데 선배명단 들고 인사 다니느라 발품 팔던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지금은 옆에 들어온 후배들 얼굴을 모른다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개원하던 시절은 주위시선이 무서워 속 태우면서도 광고를 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 전단지라도 돌렸던 친구들은 윤리위원회에 불려가기도 했고, 동문선배들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사과문까지 내며, 한동안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6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학교 로고가 새겨진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고 민원이 제기되어 불려온 갓 개원한 회원은 “동료들하고 같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선배 위원들의 지적에 잘생긴 외모만큼 능숙한 언변으로, “그것은 선배님들의 생각이지, 제 생각과는 다르니 처벌을 준다면 받겠습니다.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겠습니다”라며 오히려 우리를 설득하려 할 때, 치과계에서도 어김없는 “낀 세대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최근 지방 소도시에서 개업하고 있는 선배의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방은 개원 환경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타 지역에서 치과의사들이 몰려오는데, 그들이 순식간에 지역 수가를 흔들어 놓는다고 한다. 임플란트를 70만 원대로 떨어뜨리면서, 브릿지 환자조차 없어지는 지경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보건 당국에 알려진다면 치협이 몇 년을 싸워가며 만들어 놓은 임플란트 보험 수가가 무너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 한 것이다. 모두를 공멸로 몰고 갈 이런 수가가 차이는 있겠지만 전국이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60이란 나이는 “인생이 별거 아니더라, 왜 그리 급하게 살아 왔는지 후회 되더라, 쓰러져 있던 친구 일으켜주고 와도 됐는데, 어려운 이웃 조금 더 도와줄 걸”이란 말들을 가르쳐주는 나이라 한다. 장수의 최고 비결은 건강도, 돈도, 명예도 아닌 남아있는 친구(동료)의 수라는 말도 있다. 그런 친구들이 우리나이의 삶을 하루만이라도 먼저 살아 보고, 자신이 너무 조급하고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를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지난주 모임이 있어 제주도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제주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에 들러 기념선물로 게우 젓(전복 젓)을 사러 갔었다. 상점마다 부르는 가격이 제각각이라 어리둥절하던 차에, 적은 예산으로는 좌판에서 할머니가 담아주는 싼 젓갈이 적당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사왔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환자 입장에서 보면 재래시장 좌판이랑 치과계가 다를 것이 없었다. 내려간 것은 임플란트 수가뿐 아니라 모든 치과의사의 자존심을 시장 좌판까지 끌어 내리고 그것도 부족해 동료를 어린 시절 골목을 돌아다니며 이를 빼주던 장돌뱅이 돌팔이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동료와 함께하는 길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만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에서 마약비리 재벌2세에 맞선 말단형사 황정민이 한 대사다. 제주도에서 요즘 치과계 세태에 혀를 차면서 열변을 토하던 선배가 “그래도 치과의사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하면서 내뱉은 말이기도 하다.


쉽게 얘기해서 “배운 사람이 굶을지라도 쪽 팔리지는 말자”라는 선비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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