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 네 덕”

2011.04.04 13:43:14 제439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 (38)

목요일 저녁에 명리학 공부하며 붓글씨를 쓰기 시작한지 몇 달 되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내준 글씨가 “내 탓 네 덕”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써도 가슴에 깔린 그 무엇이 사그라들지 않아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내 탓 네 덕’이라 쓰려니 글이 잘 안되는데 혹시 ‘네 탓 내 덕’ 아닙니까? 속이 확 후련해지고 감이 팍팍 오는데요!”라고 하자 선생님께서 그냥 웃으시며 “골프 칠 때 그립을 편하게 잡으면 반듯하게 안가고 불편하게 잡아야 반듯하게 가는 것 아시죠?”하고 답하셨다.

 

물론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리 간단한가. 팔이 안으로 굽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고 얼마 전 인터넷에 화제가 된 ‘내가 배고픈 건 참아도 네가 배부른 것 못 본다’는 글귀도 있지 않은가. 결국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다양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 같은 목적으로 모인 홍대 앞 부비부비 클럽에서 부대끼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시 사람은 이기적이다. 아마도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이기심으로 인해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식 때 아버지 산소를 다녀오는 길에 차안에서 대화 도중 대학생 조카가 “성선설이 맞죠?” 하고 물어오길래 “아니”라고 답했다. “그럼 성악설인가요?” 하고 재차 묻는 질문에 또 “아니”라고 답했다.

 

의아해하던 조카가 “그럼 뭐예요?”라고 질문하여 “고등학교에서 통계학을 배웠니?” 하고 물어보고는 잠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통계학에는 표준정규분표가 있다. 양끝 부분에 악인과 선인이 분포한다고 가정할 때 대다수는 중앙 근처에 분포한다.

 

 통상적으로 유의성을 평가하는데 P<0.05를 사용하거나 P<0.01을 사용하는데 사람인 경우엔 P<0.01을 사용해 보았다.

 

이 경우, 백 명 중에 악인이 1%, 선인이 1%이고 중앙에 98%의 대다수 사람이 분포하며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쳐질수록 조금 덜 착해지고 우측으로 치우칠수록 좀 더 착한 성향을 띄는 것은 아닐까 라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또 외래에서 환자를 접하면서 느껴왔던 경험들이 “사람도 정규분표곡선을 따르지 않나”하는 생각에 이르게 하였다.

 

얼마 전 잘 아는 선배님이 이야기 끝에 “진짜로 정말 나쁜 devil같은 사람들이 있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정말 가슴에 와 닿게 공감하였다. 필자 또한 언제라도 생각나는 몇 명은 있다. 어쩌면 배려가 부족하다기보다는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탓일 것이다.

 

일본 지진과 쓰나미에서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배려하는 모습은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냥 몸에 배인 행동이지만 이기심 많은 우리들에게는 특별한 모습으로 비쳐졌다고 생각된다. 특히 센다이가 필자에게는 3년간 유학하며 울고 웃던 지역이기에 더욱더 안타까움이 크다.

 

아직도 연락이 되는 않는 지인이 있어서 마음 졸이며 부디 무사하기를 기도 하여본다. 악인은 TV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물론 삶의 현장 속에서도 없으면 좋겠으나 우리를 시험하는 것인지, 삶이 지겨워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인지, 항상 적당한 시기에 등장을 하여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백 명의 착한 환자보다 한 명의 안티 환자를 조심하라’는 선배님들의 금언이 떠오른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필자는 미운 짓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에도 너무 힘들다.

 

그래서인가, 가톨릭 성당에 가면 아주 흔하게 “내 탓이요. 내 탓이요”를 반복하여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이유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네 탓 내 덕”이 “내 탓 네 덕”으로 바뀔까. 얼마나 더 많은 환자를 보아야 미운 환자가 없어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마음고생을 해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을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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