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김지영

2020.03.09 11:32:18 제860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458)

저녁을 먹으려고 테크노마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벽에 영화 ‘기생충’ 포스터가 보인다. 아카데미상 트로피 4개가 그려진 수상 기념 포스터였다. ‘2020년 아카데미상 4개 부분 수상’이란 말을 10년 전에 했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이야기보다도 10배는 더 안 믿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소감에서 언급한 ‘인셉션’ 영화처럼 꿈속 이야기 같다. 기생충이 국가 간 계급을 넘어선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정확히 표현하면 주류에 합류한 것에 대해서이다. 한국이 영화도 만들 줄 아는 나라라고 이제 알게 될 사람들과 그들을 만날 한국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감독이 주도하고 자본이 투입되고 관객이 호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늘 감독이 원하는 대로 작품이 해석되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82년 김지영’이 그렇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이 느끼는 아픔을 나타냈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는 필자 시각에서는 작가 의도는 좋았지만 과한 설정이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트렸다. 감독은 육아와 경력단절, 한국적 가족문화 속에서 겪는 여성갈등을 표현했다. 올해 39세인 주인공은 이따금 엄마 인격이나 할머니 인격으로 전환된다. 흔히는 다중인격이라고 부르지만 이상심리학에서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한다. 통상 이 장애는 86% 정도가 어려서 성적 학대 경험이 있고, 75%가 반복되는 신체적인 학대를 당했고, 45%가 아동기에 폭력에 의한 죽음을 목격한 사실이 있는 경우가 보고됐다. 단지 3%에서만 의미 있는 아동기 외상 과거력이 없었다. 반면 주인공은 어려서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을 조금 겪었지만 따뜻한 엄마가 있었다. 이런 경우 해리성 정체감 장애 설정은 과했다. 현실감이 떨어질 때마다 영화에 몰입되지 못했다. 현실에서 해리성 장애보다는 통상 우울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울로 표현했다면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해리와 우울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심리방어기전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회피하는 것이 해리 방법이고, 꾹 참으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 숨기고 잊어버리는 것이 억압이다. 이런 억압이 모여서 우울로 나타난다. 우리는 대다수가 억압에 익숙하다. 억압을 사회생활 혹은 대인관계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사실 억압은 후진적 사고방식에서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할 때 나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했다. 현실적 상황과 내면적 불협화음이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서 우울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우울증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인지해도 표현을 못하고 혼자 아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울은 학력, 지위, 의지와 무관하다. 우리 사회는 전문직일수록 업무가 많아지기 때문에 고학력, 전문직일수록 우울이 많다. 필자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치과의사들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오늘은 ‘82년 김지영’이 아니라 우울을 겪고 있을 많은 치과의사를 위해 이 글을 쓴다. 우울을 혼자서 견디며 힘들어하고 있는 분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커다란 이벤트성 사건 없이 마음이 힘들다면 우울을 의심해봐야 한다. 의지력 문제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됐다면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먹듯이 마음의 감기인 우울이 오면 SSRI(세레토닌흡수억제제)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편해질 수 있다. 그보다 심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가까운 심리상담사를 찾는 것도 좋다. 유교적 개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전근대적인 교육시스템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최소한 한 번은 겪어야 하는 홍역 같은 것이 이 시대의 우울이다. 우울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힘들면 차라리 모르는 상담사가 더 편할 수 있다.‘ 백척간두 진일보’로 한발 내디뎌보면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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