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11] 난세에 잠자는 치과의사들

2022.12.15 13:08:30 제996호

글/김민겸 발행인(서울시치과의사회장)

 

난세에 잠자는 치과의사들

 

최근 들어 금리와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 등 경기 전반에 걸쳐 전망이 매우 어둡고, 치과계의 미래 역시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예전처럼 “꾸준히 오래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선배의 막연한 조언은 빛바랜 지 오래고, 이제 시작하는 개원의들은 당장 내일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 해서 외부 여건만 탓하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퀄리티와 효율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묘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에 당장 활용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실용적인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1. 재료-선납선출과 한곳에 모으기
- 먼저 들어온 재료를 먼저 사용하고(선납선출)
- 여기저기 흩어져서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유효기간을 넘기는 재료를 최소화해야 한다.
캐비톤 하나도, 한 통을 다 소비하고 새로운 포장을 뜯으면 그제서야 주문을 넣는 것이 싸다고 대량으로 구매해서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굳어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원장이 가장 많이 쓰는 재료와 기구는 모바일 카트 하나에 몰아서 관리하고, 그 카트가 원장을 따라다니는 것도 동선만 허락된다면 괜찮은 방식이다. 

 

2. 재료/기구/장비/프로토콜 단순화
진료실의 모든 걸 일목요연하게 관리하려면, 모든 재료/기구/장비와 프로토콜까지 최대한 단순화해야 한다.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진료실에 도입할 때는 꼭 이것이 필요한가, 구입 전에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각종 전시회에서 제공하는 샘플 조차도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면, 진료실로 가져오지 않는 게 좋다. 공짜라고 갖다 두면 원장도 모르게 새로 주문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3. 비싼 재료일수록 혹사시키지 마라
재료비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근관치료용 Ni-Ti 파일인데, 회사에서 제시하는 프로토콜을 가만히 살펴보면, 마치 Ni-Ti 혹사 대회를 보는 듯하다. 
Ni-Ti는 근관 깊숙한 곳에서만 삭제기구로 써야 한다. 근관 입구의 걸리는 치질은 long shank carbide round bur 몇 종류로 다 밀어 놓고, Ni-Ti 입장을 위한 레드카펫을 깔아 놔야 한다. 또한 Ni-Ti 파일 중 일회용으로 허가받았거나 지나치게 가격이 비싼 제품은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가격이 저렴하고 다회용으로 허가받은 양질의 제품이 시장에는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인 치과의사들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야 기업도 각성을 하게 된다. 

 

4. 효과가 의문 시 되는 제품은 멀리하라
가격부담이 크면서도 그 효과가 의문시되는 대표적인 것이 골이식재와 멤브레인 제품이다. 사실 골유도재생능력이 가장 오랜 시간 검증된 것은 자가골이고 그 환자 자신의 골막이다. Allo/Xeno/합성골로 상품화된 제품들은 사실은 뼈가 아니라 대부분 bone cement로, 외부의 침입에 제대로 된 방어역할을 하는 진짜 잇몸뼈와는 구분해야 한다. 

 

5. 시간을 줄여주는 제품이 효자다
치과임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아무리 검증된 결과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프로토콜이나 재료는 재고해 봐야 한다. 최근 써본 재료 중에서는 Aluminum Chloride 계열 지혈제가 아주 혁신적이던데, 효과가 아주 뛰어나서 코드패킹이나 지혈에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6. 소비자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자
최근 일부 임플란트 회사에서 리베이트 쌍벌제를 빌미로 정상적인 소비자의 반품요구에 제한을 가하려 한 적이 있었다. 구글 검색만 해봐도 책임있는 정부 기관에서 임플란트 반품은 정상적인 거래행위며, 리베이트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대부분 치과의사들이 법에 문외한이고 리베이트를 논하면 반품을 꺼려하지 않을까 해서 나온 꼼수로 보인다. 다행히 뜻있는 소수의 치과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이끈 덕분에 임플란트 회사들도 기존의 반품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일단락되기는 했다. 
그러나 회원들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치협에서 임플란트 회사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근거도 없이 리베이트 운운하는 공문을 써서 돌리고도, 공식 사과 한마디 없는 점은 두고두고 협회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7. 이제는 난세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법언이 있다. 독일의 법학자인 루돌프 폰 예링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권리를 오랫동안 행사하지 않는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대부분 치과의사들은 학창시절부터 모범생으로만 살아왔고, 치대시절에도 능동적인 문제제기와 학습의 경험보다는 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학교에서 이끄는 대로 커리큘럼을 소화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의료인으로서 의무는 모두 지키려 노력하면서도 그 권리를 주장하는 데는 매우 서툰 면이 있다. 치과계는 이제 그 수동적인 습관과 매너리즘의 벽을 치과의사들 스스로 깨야할 만큼 충분히 난세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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