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07.4 상세불명의 부정교합

2024.03.04 10:00:23 제1054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651)

구강내과 전문의가 아닌 치과의사들에게 ‘K07.4 상세불명의 부정교합 Malocclusion, unspecified.가 무엇을 의미하나요?’라 질문하면 한 번에 답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필자가 진단서를 발부하기 위해 질병분류기호표를 찾다 보면 ‘K07.4 상세불명의 부정교합Malocclusion, unspecified.’가 늘 보였다. 그때마다 궁금증이 있었다. 교합을 주로 다루는 교정전문의인 필자가 어떤 교합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특히 필자는 ‘부정교합’이란 용어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지녀왔기 때문이다. ‘정교합’이 아닌 모든 교합이 부정교합이다. 즉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용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교정전문의인 필자에게 내원한 초진 환자에게 주소를 물어보면 적지 않은 환자가 “부정교합을 개선하기 위해 치아교정치료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이 사용한 부정교합이란 용어만으로 필자는 구체적으로 환자상태를 파악할 수 없어 또 질문해야 한다. 마치 택시에 탄 승객에게 운전수가 “어디로 갈까요?”라고 목적지를 묻는데 “운전하세요”라고 답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K07.4 상세불명의 부정교합’은 필자의 머릿속에 이미지화 되지 않았다. 결국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보았다. 한국질병분류코드를 거쳐 국제질병코드 ICD를 뒤졌다. 여기를 조사하면서 약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Malocclusion, unspecified.은 ICD 10, M26.4이다. ICD에는 한국질병코드와 달리 정확하게 명시된 것이 있다. M26.4는 보험 청구목적으로 오로지 1)어떤 항목이나 2)상황에도 해당되지 않는 두 가지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치아가 가지런하지만 치아모양이 약간 이상하여 정교합이라고 말하기 딱히 어렵다든가 하는 애매한 경우 등을 의미하며 오로지 보험 청구용으로만 발부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부정교합은 질병(disease)이지만 질환(illness)은 아니다. 질병은 생물학적인 의미로 수치나 과학적 근거에 의해 의학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고, 질환은 개인적인 고통이나 불편함과 같은 사회심리학적인 개념이다. 필자는 환자에게 질환(불편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환자는 질병(부정교합)으로 답변하기 때문에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질병은 질환을 의미하지도 않고 질환을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가 부정교합이다. 부정교합이 있다고 환자가 질환에 이환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부정교합이 있어서 턱관절에 큰 문제를 발생할 것을 걱정하는 건강염려증 환자를 만난다. 그때 턱관절은 코끼리고 부정교합은 강아지 정도이니 아주 허약한 죽기 직전의 코끼리가 아니라면 질환을 만들 정도로 영향이 크지 않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교정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치근흡수를 설명할 때 환자로부터 가끔 “치근흡수가 발생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라는 반문을 받으면, 딱히 답변이 옹색하여 “치아가 약해지는 거지요”라 말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결국 질병과 질환의 차이다. 치근흡수가 발생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환자에게 임상적인 통증이나 불편감을 주는 질환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염려증 환자들이 지니는 걱정도 결국은 본인이 지닌 증상을 확대해석하거나 질병을 과도하게 끌어다가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환자는 경미한 부정교합에 대하여 최악의 경우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이땐 도수분포표를 그리고 상하위 5%를 제외하고 90%를 일반적이라고 설명하고, 양극단 5%에 해당되는 것은 운의 문제라서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가끔 부정교합을 ‘질환을 유발하는 교합’과 ‘유발하지 않는 교합’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개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객관화시켜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매번 포기했다.

 

요즘 환자와 대화에서 질병과 질환의 개념적 차이를 기준 삼아 상담하면서 답답함이 많이 줄어들었다. 생각 하나의 변화가 말을 바꾸고 말 하나의 변화가 상황을 바꾼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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