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에 의료계 갈등 고조

2024.03.14 13:42:25 제1056호

간협 “환영” vs 의협 “불법 무면허진료 조장”

[치과신문_신종학 기자 sjh@sda.or.kr] 정부가 지난 3월 8일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한 것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지침에 따르면 10개 분야 98개 진료지원행위 중 엑스레이, 관절강 내 주사, 요로전환술, 배액관 삽입, 수술 집도,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개 행위를 제외한 89개 진료지원행위를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대한간호협회(회장 탁영란·이하 간협) 측은 “간호사 업무에 관한 법적 보호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라며 “이를 근거로 명확한 간호사 업무 범위와 법적 보호를 위한 간호법안이 제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8일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 지침 설명회에서 보건복지부 측은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한 시범사업으로 참여 의료기관 내 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된다”고 전제했다. 이에 보완 지침의 주요 보완사항으로 △간호사 위임 불가능 업무 및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범위 가이드라인 제시 △간호사의 숙련도, 자격(전문간호사, 가칭 전담간호사, 일반간호사) 등을 구분해 업무범위 설정 및 의료기관의 교육·훈련 의무 명시 △복지부 내 ‘간호사 업무범위 검토위원회’ 구성 및 운영 통해 현장 질의 대응 및 (위임 업무범위) 승인 등을 설명했다.

 

간협 탁영란 회장은 “그동안 의료기관은 전문간호사, 가칭 전담간호사(PA간호사) 뿐만 아니라 일반간호사에게도 의사업무를 관행적으로 지시하고 수행토록 해왔다”며 “하지만 이번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 마련으로 간호사의 자격, 교육, 숙련도에 따른 수행 가능 업무준이 제시됐고, 이는 간호사 업무의 법 보호체계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탁 회장은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정부의 의료개혁이 성공하길 바라고, 항시적인 간호사 업무 범위의 법적 보호 및 권리보장 체계 구축을 위해 ‘간호법안’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의 이 같은 지침 발표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측은 즉각 철회 요구에 나섰다. 의협 측은 “해당 지침에는 골수 천자, 뇌척수액 및 조직 검체 채취 등 인체 침습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보건복지부는 동 행위에 대해 의료계와의 어떠한 협의 도출도 없었음에도 마치 협의 후 시행하는 것처럼 발표했다. 이번 시범사업의 항목들은 국민 건강과 안전에 위협적인 문제를 발생시키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또한 의협은 “이번 시범사업은 의료인 간 업무 범위를 구분하고 있는 의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종용하는 것”이라며 “해당 정책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의료인에게 전가시키는 파렴치한 조치에 불과하다”면서 시범사업의 전격 철회를 요구했다.

 

의협 측은 정부의 이번 보완지침에 대해 △간호 인력으로 하여금 불법 무면허 진료 조장에 불과 △시범사업 참여 여부는 전적으로 의료기관의 자율적 영역 △사고 발생 시 최종 법적 책임을 의료기관장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 △전문간호사 자격 구분을 무시한 의료법령 위배 △무리한 간호 직역 업무확장은 직역간 업무충돌을 초래할 것 등을 이유로 철회를 거듭 요구했다.

 

의료공백 대책을 간호사 업무 범위 보완 지침으로 해결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측은 성명을 내고 “전공의 진료거부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술 집도와 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일부를 제외하고 환자생명과 직결된 고난도·고위험 시술까지 의사 업무 중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무제한으로 허용함으로써 환자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며 “이는 의료기관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어, 진료에 혼선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의사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 간호사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 같의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간호사 업무범위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은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진료공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간호사’(일명 PA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으로, 지난 2월부터 여러 병원장들이 동 시범사업 실시를 건의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측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지난해 6월부터 의협과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학회, 대한간호협회 등이 참여한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총 10차례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는 점을 밝혔는데, 이번 시범사업의 기본 골격과 내용이 이 협의체에서 논의된 것을 토대로 마련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복지부는 “동 시범사업은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근거를 둔 것으로 시범사업에서 정한 진료지원행위는 불법 의료행위가 아니다”고 밝혔지만, 이번 시범사업으로 인해 의료계 직역 간 갈등과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신종학 기자 sjh@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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