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리고 망각

2011.10.31 20:33:18 제467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 (66)

치과에 오랜만에 잘 아는 지인이 충치치료를 받겠다며 내원하셨다. 교정만을 치료하는 필자 입장에선 난감하였으나 연로하신 분이니 교정전문을 설명하기도 구차하여 일단 오랜만에 와동형성을 하고 레진으로 충전하였다. 교정치료를 배운 후로 20년 가까이 하지 않았던 터라 스스로 서투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치료방법을 많이 잊어버린 모습에 잠시 놀랐다.

 

그 후 아는 선생님께 자세히 물어보고, 지금 레진이 7세대까지 시판되고 있음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억에서 사라짐과, 잠시 잊고 사는 동안에 발달해 버린 기술에 대한 놀라움과, 멈추고 있을 때 뒤쳐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하는 기회였다. 인간의 기억에 관한 것은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주제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기억을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의 3단계로 나눈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가 처음으로 기억되는 곳이 ‘감각기억’이다. 이곳에 저장되는 기억은 극히 짧은 정보로 지속시간도 짧아 눈으로 본 것은 1초 정도이며 귀로 들은 것은 4초 정도 기억된다. 그리고 감각기억 중에서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 정보만이 단기기억에 보내져서 저장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유지기간은 짧은 편으로 대체로 15초 정도이며, 정보량도 5개 내지 9개 정도에 그친다. 단기기억에서 반복되는 연습을 했을 때만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여기서 연습이란 정보를 몇 번 씩이나 머리에 떠올리거나 입으로 중얼거려 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들어온 정보를 생각 없이 듣고만 있다면, 그 정보는 지워져 버리는 것이다. 즉, 긴장상태에서만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반대로 망각의 메커니즘도 있다. 친구와의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시험을 보려고 열심히 외운 것이 막상 시험장에서 문제지를 접하는 순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복된 연습에 의하여 장기기억 속에 저장하여 두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망각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우선 ‘간섭설’이 있다. 이미 받아들인 정보보다 다음에 입수된 정보 혹은 그 이전에 존재하던 정보에 의하여 그 정보의 보전이 간섭을 받거나 방해를 받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한 후에 잠을 잔 사람과 잠을 자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선잠을 잔 사람이 자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기억능률이 좋은 것이다(선잠효과). 이는 잠을 자지 않은 사람은 무의식 중에 여러 가지 정보가 머리속에 파고 들어와서 학습의 보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험보기 전날에는 중요한 것만 외우고 숙면을 취하는 것이 기억을 효과적으로 되살리는 비결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심리적인 보상기전으로, 괴로운 기억이나 고통스러운 추억을 무의식적으로 지우는 것이다. 반면 노화현상으로 치매가 오는 경우도 있으며, 전신적인 병에 의한 기억 소실도 있을 수 있다. 이 이외의 기억은 위조되기 쉬운 특징이 있다. 요즘 유명한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가수들은 가급적이면 나중에 노래하기를 선호한다. 이유는 나중에 노래한 사람의 감동이, 이전에 노래한 사람보다 여운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절정과 종결의 법칙’이라 한다. 기억이 과거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경험의 절정 혹은 종결 시의 본인 감정에 따라서 기억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을 왜곡시키는 것은 마지막 5분이라고 한다. 따라서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또한 위조된 기억의 대표적인 것의 예는 어떤 식당에서 형편없는 음식이 나온 반면 종업원들이 매우 친절하였을 경우, 이런 친절한 종업원이 인상에 남았다면 그 음식점의 음식마저 훌륭했다고 기억을 한다는 것이다. 치과 외래에서 정말 열심히 치료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사소한 것에 표정이 달라지는 환자를 보며, 의사 본인만 아는 배신감 같은 아픈 기억을 대부분의 치과 선생님들이 가슴 한 편에 지니고 있으리라. 그것은 인간의 심리적 장난이었으니 망각으로 잊어주길 바란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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