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이젠 우리가 영화 ‘국제시장’의 독일 입장 아닌가?

2016.01.13 14:39:09 제666호

박용호 논설위원

“나, 쌍둥이 아줌마야. 알아보겠어?” 음색은 예전 그대로였다. 다만 세월의 무게가 점점이 뽀얗던 피부에 내려앉았다. 45여년 만인가, 치과에서 특별한 환자분을 맞이했다. 독일 간호사로 나간 후 사촌형과 이혼하고 그대로 독일에 눌러앉은 형수였다. 사촌형은 10년 전 돌아가셨다. 초등학생 때 나의 엉덩이 종기를 보아주던 형수. 입안은 깨끗했다. 게르만인들 속에서 버텨낸 체력의 저력인 듯 했다. 부담 없이 차라리 잘된 생각이 들었다. 전문용어와 진료비가 개입될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치아 나이는 40대시네요” 민망함을 감추고 구강검사를 핑계로 불쑥 온 형수에게 자존심을 지켜주느라 무심결에 그랬나?


인간 정리(情理)상 그대로 보내면 후회가 남을까봐 점심을 마주했다. 긴 세월이 흐르면 각자 기억되는 것도 다르나 보다. 형수는 필자가 초등학교 졸업식 때 대표로 상 받는데 참석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단다. 찾아 갈 때마다 김치찌개를 푹 끓여주고 용돈을 챙겨주셨으니 점심을 많이 드시라 했다. 형수는 독일에서 내과병동에 장기근무 하다 비뇨기과 외래로 옮겨 근무했다고 했다. 은퇴 후 병원주택에서 연금을 받으며 지내는데 일 년에 한번 한국에 올 여유는 된단다. 조카를 데려다 독일교육도 시키고, 한 조카는 저 세상에 먼저 보내는 고통을 겪었다. 형수의 인생행로를 감히 평가할 수는 없다. 그것이 당시에 그녀에겐 최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66년부터 10년간 독일에 1만여명이 파견되었다. 현재는 더 요청해도 인건비 수준이 비슷하여 희망자가 없다고 한다(2013년부터 중국 노인 간병 간호사로 대체중이라고 한다). 당시 한국 초급 공무원의 월급이 3,300원이었는데, 파독 간호사들이 5만4,000원을 받았다. 쌀 한가마가 3,000원 정도였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열악한 근로조건을 묘사했지만 달리 보면 어느 정도 선민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고임금과 고급문화, 선진의술을 앞서서 접할 수 있었던 엘리트층이었던 셈이다. 1억여 달러를 송금해 국가경제에 도움을 준 것은 부수적인 일이었다.


현재 우리의 간호인력 부족은 만성화가 되었다. 지방 중소병원은 매우 심각하여 응급실과 병동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다. 서울지부에서도 경력이 단절된 유휴인력의 재취업을 지원하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1960년대 같이 생계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자기보다 어린 직원과의 조화가 어렵고, 실무가 부담되고 임금문제가 대두된다. 3개 치의보건간호과 고교생 지원 대책도 한계가 있다. 우선 이들 학교와 간호조무사 학원에의 유입이 감소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IT, 방송, 연예,  체육, 요리에는 별난 관심을 갖지만 간호, 치위생직은 점차 매력을 잃어간다. 감정노동이 타 직종보다 많고 의료인 폭행, 성추행 시비, 야간 육체노동이 이런 성향을 부추긴다. 전통의 직업, 백의의 천사직업이 좋은 것은 온 국민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수입이 받쳐주고 여타 서비스업보다 복지문제가 월등해야 밀려오는 것이지, 직업만 자꾸 좋다고 하면 한 두 명은 몰라도 더 이상은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현실의 타개책은 무엇인가? 이제는 진지하게 공개적으로 간호인력 수입을 거론할 때가 되었다. 당장 2016년에 포괄간호서비스(보호자나 간병인 없이 간호사가 입원환자를 돌보는 제도)를 시행하자면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간호 인력을 수입한다고 꼭 일자리를 내주는 것만은 아니다. 문물, 인적교류가 되면서 관련무역과 기회가 창출되기 마련이다. 이미 3D 업종은 다문화인이 유입된 마당에 유독 간호직만 성역처럼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독일과 그런 과정을 밟지 않았는가. 글로벌 도네이션의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문제점은 많다. 우선 내부적으로 간호인력 개편에 대한 단체 간의 논란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개편과정에서 국내의 간호조무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또한 그들의 숙원인 전문대 양성을 가속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칼럼을 쓰며 고인이 된 사촌형을 언급하고 평탄치 않은 친족사를 알리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초고속 경제 성장기에 파독간호사 가정에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근거리에서 목격하고 ‘연민’해온 필자지만 그만큼 간호인력 수급이 국민복지에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알렸다. 형수의 방문을 받고 그 생각이 절실해 졌다. 풍비박산을 겪고 평온해진 형수가 거기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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