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부터…

2016.01.13 14:29:57 제666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265)

어느 날인가부터 연말연시는 번잡함과 설렘이 없이 차분하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어느 날부터 연말에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잘 들려오지 않는다. 음악 저작권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지하철에 표를 파는 사람이 없어져서 길을 물어보려 해도 물어볼 곳이 없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하여 자판기로 대체했다.


어느 날부터 뉴스에서 사람이 한두 명 사망한 사건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대형 참사가 많다보니 한두 명 사망 사건은 큰 사건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앞집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전에 살던 사람이 말없이 이사를 갔다. CCTV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없으면 불안하다. 어느 날부터 붐비는 지하철에서 한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무엇인가를 본다. 행여 잘못 접촉하여 성추행범으로 몰릴까 두려워서 양손에 모두 무엇인가를 쥐고 있다. 예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성추행이라던 외국 기사에 황당해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우리 이야기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이 구분되지 않는다. 성형으로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적인 압구정 얼굴로 변한 까닭이다. 어느 날부터 거리의 승용차 색깔이 대부분 회색이다. 세차를 자주하지 않아도 덜 지저분해 보이는 이유이다. 어느 날부터 계절과 상관없이 황사와 미세먼지로 세상이 온통 뿌연 날이 많아졌다. 중국의 산업화의 결과이다. 어느 날부터 높은 계단을 오를 때에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땅을 내려다본다. 앞 여성의 치마가 너무 짧아서 민망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대학을 4년에 졸업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졸업생이 취업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전화를 걸고 받기보다는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더 선호한다. 보이스피싱으로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피하다보니 자연히 문자를 더 선호하게 되었고 또 많은 일들이 카카오톡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도 있다. 어느 날부터 종이 연하장은 구경할 수 없다. 카톡과 문자가 대신한다. 어느 날부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을 찾기보다는 네이버나 구글을 찾는다.


어느 날부터 요리를 하려면 처음으로 하는 일이 백선생을 검색하는 일이다. 어느 날부터 어른도 등에 가방을 메고 다닌다. 실용이 체면을 누른 것이고 방송이 고정관념을 넘은 것이다. 아니면 어른이 애가 된 탓이다. 어느 날부터 시계는 장식품이고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확인한다. 어느 날부터 돈이 기도를 하고 道를 돈이 닦는다. 어느 날부터 물도 사먹고 공기도 중국에서 통조림으로 불티나게 팔린다.


어느 날부터 솜만 물고 있어도 부정교합을 고친다는 황당한 내용을 방송매체들이 선호한다. 자극적인 내용이 아니면 시청률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방송의 절반이 먹방이다. 대리만족일 수도 있고 인간의 본질적 욕망의 만족일 수도 있다.


어느 날부터 커피숍, 영화관에서 주문하는데 주문받는 직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분명히 한국말인 것 같은데 천천히 말해달라고 해도 못 알아듣는다. 어느 날부터 버스정거장에 다음 도착할 버스시간표가 보인다. 어느 날부터 책을 살 때 책방에 가지 않는다. 인터넷주문이 더 싼 이유이다. 어느 날부터 앤서링머신과 대화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느 날부터 중국 증시와 미국 금리가 한국의 사건, 사고 소식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주가와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등산을 다녀오면 운동을 하였다는 뿌듯함이 일주일을 간다. 어느 날부터 등산을 가도 정상에 오르려 기를 쓰기보다 적당한 중턱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즐기다 내려오는 것이 좋다. 어느 날부터 뉴스 보기가 겁이 나서 드라마를 보았다. 그런데 드라마가 너무 막장들이라서 다큐멘터리로 바꾸었다.


어느 날부터 울거나 부잡스런 아이도 예뻐 보인다. 어느 날부터 모임에 앞자리보다 뒷자리가 편하다. 어느 날부터 아침밥보다 사과 한 개가 좋다. 어느 날부터 매일이 똑같아도 지루하지 않다. 어느 날부터 세상에 모든 것이,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도 들에 핀 꽃 한 송이도 감사하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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