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치과계에는 내부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불법 네트워크 치과’로 불리는 기업형 프랜차이즈식 치과들이 치과계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지금, 정상적인 네트워크 치과들은 이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려 노력하고 있다. 임플란트가 블루오션으로 등장하던 시기에 경기 호황이 치과의 대형화와 그룹화를 부추겼고, 이에 힘입어 네트워크 치과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동일한 브랜드와 진료 서비스의 표준화가 네트워크의 기본 요소 인양 인식됐고, 일부서는 이 같은 개원가의 변화를 거대한 흐름이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표준화에서 다양성으로
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환자’에서 ‘고객’으로의 전환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논란이 있지만, 치과에 환자 중심의 서비스 마인드 도입이 보편화된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고객 서비스 시스템을 치과 개원가에 최초로 제시했던 예치과네트워크는 “환자를 위한 서비스 시스템은 시대적 흐름이다”고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예치과 모델이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치과는 물론 기존의 치과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예치과는 진료의 가치를 환자를 대하는 시간에 비례한다는 주의하에, 고수가로 VIP 환자 층을 공략하는 브랜드 정책을 내 놓았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표준화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비스 표준화 정책을 폈던 예치과에도 변화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경기불황이라는 절대적인 위기감을 예치과 역시 피할 수 없기 때문. 예네트워크 최동현 사업본부장은 “환자고객 서비스 시스템은 시대적인 요구였고, 예치과뿐만 아니라 의료계에 보편화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며 “하지만 일방적인 중앙 집중식 표준화보다 회원치과의 지역과 환경을 고려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예치과는 한시적으로 가입비를 대폭 낮추는 등 회원가입 요건 또한 완화했다. 고비용 정책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형화 거품이 빠진다!
치과계 경기불황과 저수가 기업형 네트워크들의 득세는 기존 네트워크 치과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예치과의 정책적인 변화에서 볼 수 있듯이 네트워크 치과의 정답으로 인식됐던 표준화보다 다양성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가 이런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이런 변화를 ‘치과 대형화의 거품 빼기’ 현상으로 보고 있다.
치과컨설팅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컨설턴트는 “기존의 네트워크 치과들은 서비스로 포장한 치과의 외형 넓히기에 치중했다”며 “하지만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그 거품이 빠기지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경기 호황기에 맞춰 임플란트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치과 대형화는 이 같은 추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난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환자의 진료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를 전담하는 인력이 필요했고, 이는 치과 ‘코디네이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치과는 상담실장과 진료실장, 각종 팀으로 인력이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비의료인력의 치과 유입이 크게 늘었고, 이들을 양성하는 사설 교육기관이 성행했다.
치과 대형화가 한 때는 필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치과 경기를 감안한 지금은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A컨설턴트는 “이제 슬림(slim) 경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임플란트 때문에 치과가 호황을 이뤘던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자체가 거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거품은 지난 2009년부터 서서히 빠기기 시작해 올해 그 정점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 나가야 한다”고 전망했다.
실속형, 지역밀착형 네트워크로
고객 서비스 개념이 주목을 받고, 대형화와 그룹화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동네치과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하지만 일부 기업형 불법 네트워크들의 어두운 이면이 수면위로 불거지면서 ‘동네치과’들의 강점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는 게 최근 상황이다.
기존의 네트워크 치과들 또한 이 점에 입각해 지역 밀착형, 실속형 네크워크를 추구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주치의’를 모토로 삼고 있는 로덴치과그룹(대표 조영환·이하 로덴)은 치과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SDI아카데미를 통해 교합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로덴 조영환 대표는 “SDI가 큰 변화의 시작이었고 현재의 로덴은 SDI가 구체화된 모습”이라며 “임상중심의 정체성이 뚜렷한 치과를 만들겠다는 진심이 통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브랜드 가치에 편승해 마케팅을 하는 프랜차이즈형 보다는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며 공동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네트워크의 본연이라 보고, 그 핵심인 임상에 대한 연구와 지원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한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주치의’ 개념을 도입해 기존의 수익 지향형 네트워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크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로덴의 목표다. 임상을 기반으로 핵심 가치만 공유한다고 실속있는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 실질적인 경영관리 및 지원책을 가미해야 한다.
로덴의 MSO격인 로덴포유 조남일 이사는 “기본적으로 진료 철학을 공유하고 이후에 해당 지역의 성향을 파악해 지역 밀착형 주치의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이 점이 덤핑치과와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환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네트워크, 수익형 유통망 벗어나야
서비스 시스템의 표준화가 더 이상 메리트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 오히려 지역 밀착형으로 주변환경에 맞는 시스템을 강화해 가는 것이야 말로 네트워크 치과들이 나아갈 길이다. 이 같은 자성 아닌 자성의 모습은 그 동안 네트워크 치과들이 본질보다 부수적인 부분에 치중했고,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임플란트를 위시한 개원가의 그룹화 붐에 대해 일각에서는 치과의 본질을 망각하고 ‘네트워크’를 곧 ‘수익모델’로 인식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한때 세간의 관심을 모으면서 등장했던 B네트워크의 경우 출발부터 ‘수익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초기 회원 늘리기에 치중했던 B네트워크는 유통망을 확보해 공동구매 등 부수적인 수익 사업들을 벌이는 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는 그 존재감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흐지부지된 상황.
또한 특정 네트워크 치과를 중심으로 설립된 모 국산 임플란트 회사는 빛을 발하기도 전에 많은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사장됐다. 주식 상장에만 눈이 먼 결과였다.
이 밖에 많은 치과 네트워크들이 실패를 겪은 것은 진료의 본질보다 네트워크라는 인프라를 이용한 부수적인 수익사업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기업형 불법 네트워크는 치과 자체를 수익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의료전문 컨설팅 휴네스 윤홍철(베스트덴치과) 대표는 “MSO 등 중앙 통제조직을 가지고 수직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네트워크들은 그 구조적인 특성상 수익 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영리법인에 준하는 네트워크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치과의 본질인 ‘진료’를 망각하고 ‘경영 시스템’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게 윤 대표의 주장이다.
개별 치과들의 이익보다 네트워크 자체의 수익을 위해 그 구성원이 하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수직적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다.
치과의 거품이 빠지면서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경영 시스템에 관심이 높다. 하지만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일부 대형치과그룹 특히, 불법적인 요소가 다분한 일부 불법 네트워크들의 공격이 ‘나홀로’ 개원의들의 소신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법제도의 보완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료 중심의 치과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 전략이 절실하다.
신종학 기자/sjh@sd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