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2020.07.16 13:06:27 제880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478)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최근 심리적 트라우마를 지닌 그림 동화작가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 일반 동화와 달리 강한 메시지를 던진 그림동화책이 몇 권 있다. 대표적인 것이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린왕자’다. 지금도 혼자서 편안한 때면 가끔 꺼내서 읽어보곤 한다. 이 책들 가운데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꽃이 등장하지 않는다.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고, 그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마지막에 나비가 되는 여정을 그렸다. 나비가 해야 할 일이 꽃에 있고, 책을 읽는 독자가 꽃이기 때문이다. 작가 트리나 폴러스가 의도한 제목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알에서 나온 기쁨을 잠깐 만끽한 줄무늬 애벌레는 모든 애벌레가 가는 길(기둥)을 따라서 그냥 이유 없이 올라간다. 도중에 노란 애벌레를 만나서 올라가던 것을 포기하고 행복하게 지내지만,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는 노란 애벌레와 헤어지고 다시 본격적으로 경쟁에 참여해 기둥에 오른다.


두 번째 오름에는 강한 목표를 갖고 무차별하게 짓밟으며 올라선다. 정상에 다가왔을 때 비로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 돈과 명예를 향한 맹목적인 경쟁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가를 작가는 보여주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애벌레 기둥이 자주 연상된다. 부동산 광풍에 휩싸이고, 최고 지도층들이 미투로 무너진다. 보고 있는 이들은 허탈감을 느끼고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작가는 이런 사회에서 욕망의 기둥을 버리면 희망이 보인다고 말한다. 욕심에서 시작된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이 결코 낙오자가 아니고, 애벌레가 번데기를 지나 다시 나비가 되듯이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이라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라 말한다. 최근 인기 프로인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사회에서 낙오되거나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행복을 이야기한다. 반면 TV에 보이는 최고 지도층들은 평안해 보이지도 않고 행복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감옥에 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보던 여류작가는 경쟁에서 벗어나야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애벌레 우화로 표현하였다. 작가는 멈춤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맹목적으로 오르는 경쟁을 멈춰야 내려올 수 있고, 애벌레 신분에 대한 미련을 멈춰야 번데기고치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변화의 시작은 멈춤에 있다. 하지만 멈춤은 두 가지 때문에 어렵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멈추었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실 미련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달리는 자전거에서 페달 돌리는 것을 멈추면 쓰러지기 때문이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계속 돌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목적지가 있다면 자전거를 멈출 수 있지만, 쓰러지지 않는 것이 목적이라면 멈추지 못하고 결국 끝은 탈진이다. 시작은 목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탈진 전에 멈출 수 있을 만큼 현실적 목적이어야 한다. 비현실적이라면 욕심과 허상일 뿐이다.

 

작가는 멈추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남을 강조하고 용기 내기를 권한다. 노랑나비가 줄무늬 애벌레에게 고치가 되기를 설득하지만 주저한다. 사람들은 멈춰야 함을 알면서도 주저한다. 멈춤이 어려운 세 번째 이유인 익숙함 때문이다. 행위로는 습관이며 에너지로는 관성이다. 습관은 생기는 데 걸린 만큼 끊는 데도 같은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즐거움이나 쾌락이 동반된다면 2~3배 이상 걸리고 마약처럼 의지로는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작가는 모두가 가는 길이 옳지 않을 수 있고 행복이란 애벌레나 나비가 아닌 꽃에 있음을 암시하고 마무리한다.


집이란 사람이 거주하는 목적이지 투기가 목적이 아니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 자신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료는 치료를 위한 것이지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다. 본말이 전도된 사회이고, 중심잡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이다.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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