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마약, 설탕

2025.04.29 16:18:14 2025SS

글_김의동 원장(청구치과)

 

30대 중반까지도 아메리카노 커피는 쓰다고 먹지 않았다. 하루에도 두세 잔씩 믹스커피를 먹고, 아침을 빵으로 대신할 때는 빵보다 더 달달한 커피우유를 함께 먹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안 아프던 곳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하고 피부에 뭐가 나면 잘 없어지지 않았으며 만성적인 피로감에 건강에 대한 불안감은 조금씩 커져 갔다. 수십 년째 당뇨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믹스커피도 쓰다고 설탕을 더 타서 드시는 어머니에게 자란 나는 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상당수의 충치를 앓았고, 어느 날 우연히 설탕 중독에 대한 책들을 접하면서 나의 건강 문제도 설탕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설탕이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설탕의 위해의 심각성과 끊기 어려운 중독성에 대한 인식은 사람마다 크게 차이가 난다.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산업화와 함께 설탕의 대규모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면서 예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당뇨병과 심장질환, 비만 등의 만성질환이 10-20년의 시차를 두고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현재의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당수의 사람들이 설탕 없이는 살기 힘든 설탕 중독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식생활에서 설탕에 대한 입장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설탕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믿지 않거나, 다소 해롭더라도 설탕 섭취를 줄일 생각이 없는 이들이다. 아직 건강한 젊은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고, 과다한 설탕 섭취가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하거나, 알아도 이미 중독된 단맛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류다. 마치 담배나 술이 해로운 줄 알면서도 쉽게 끊지 못하는 것처럼.

 

둘째, 설탕의 위해를 알고 있고, 때로는 갈등하고 좌절하며 포기하더라도 설탕 섭취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설탕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인 달콤함의 쾌락과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식품을 찾기 어려운 환경 때문에 설탕을 끊지 못한다.

 

셋째, 설탕을 완전히 끊었거나 완전히 끊지는 않더라도 단맛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설탕처럼 과도하고 인공적인 단맛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들이다. 이들은 설탕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체 식단과 가공되지 않은 자연산 식품들의 거칠면서도 담백하고 깊이 있는 풍미를 즐길 줄 알게 되어 설탕의 단순하고 강렬한 단맛을 오히려 느끼하고 불쾌하게 감각한다.

 

첫째와 둘째를 가르는 것은 설탕의 위해성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 또는 믿고 있느냐 하는 인식의 문제, 두뇌의 문제이고, 둘째와 셋째를 가르는 것은 미각과 취향이 바뀌느냐 바뀌지 않느냐 하는 실천과 감각의 문제, 몸의 문제이다.

 

 

인식의 문제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설탕의 위해성의 가장 뚜렷한 증거는 치아에 발생하는 충치인데, 세균이 설탕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산으로 도자기처럼 단단한 치아도 부식시키는 질환이 충치임을 떠올려 보면, 몸 안에서 세균이 설탕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산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대략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설탕은 각종 유해균과 곰팡이, 암세포를 과증식시키고, 지속적인 당분의 과다 섭취는 인슐린 수용체의 민감성을 저하시켜 인슐린의 기능을 떨어트리는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한다. 인슐린 저항성은 당뇨병과 대사증후군의 전조로 여겨지며, 뇌에서는 알츠하이머, 신장에서는 만성 신장 질환을 촉진한다.

 

다음으로 설탕의 중독성은 어떻게 나타날까? 설탕 섭취를 통해 혈당 수치가 상승하면 이를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되고, 인슐린이 도파민의 수용체를 자극하여 도파민의 분비가 증가한다. 이는 마약의 작용 기전과 유사하며, 높아진 인슐린 수치는 렙틴의 수치도 증가시킨다. 주로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렙틴은 식욕억제와 대사증가를 촉진하는데, 렙틴의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 렙틴 저항성이 생겨서 끊임없이 음식을 더 갈망하게 된다. 분명히 배가 부른데도 특정 음식(특히 가공식품)을 지속적으로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지 않은가?

 

실천의 문제는 어떨까? 설탕의 위해성과 중독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취득한 후에는 자신의 입맛을 바꾸어보려는 노력과 실천이 실제로 설탕 섭취를 줄일 수 있는가를 판가름하는 관건이 된다. 평생을 단 맛에 길들여져 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설탕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의지만으로 끊으려는 노력은 오래 가기 어렵다. 끊어야 할 음식은 무수히 많지만, 끊는 것 못지않게 몸에 좋은 음식 섭취를 늘리고 건강한 취향과 미각을 살리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의 미뢰는 2주마다 재생해서 건강한 지방과 미네랄, 단백질의 섭취를 늘리고 설탕 섭취량을 크게 줄이면 미각이 훨씬 민감해져서, 예전에 쓰게 느껴지던 음식들이 맛있게 느껴지고 달디 단 음식들이 싫어질 수 있다.

 

설탕을 뺀 건강한 메뉴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만들어 먹는 것은 실제로 설탕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이다. 설탕 중독을 다룬 책들에서 건강한 식단의 예시와 레시피가 거의 빠지지 않는 이유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 먹든 가족이 만들어 주든, 문제는 직접 재료를 구입하고 조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외식이나 구입해서 먹는 것으로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찾기도 어렵고, 설사 찾더라도 많지 않아서 그것만 계속 먹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에 이로운 음식들을 많이 알고 다양하게 조리하고 충분히 즐기며느끼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하여 실제로 자신의 입맛과 감각을 바꾸어 내고, 궁극적으로는 변화하는 자신의 몸을 감각하게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의 입맛과 취향을 바꾸는 것이 실천의 문제, 더 나아가 감각과 체화와 몸의 문제라고 언급한 이유다.

 

 

설탕이 때로는 술이나 담배, 심지어는 도박이나 마약보다도 끊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이 술, 담배, 도박, 마약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음식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술, 담배, 마약 등은 우리가 환경을 바꾸고 최대한 접촉 면적을 줄이는 노력은 가능하지만(그렇다고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음식을 아예 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음식을 섭취할 때마다 우리는 단맛, 설탕의 유혹에 노출된다. 간식을 포함하면 적어도 보통 하루에 네다섯 번을 무언가 먹게 되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설탕의 유혹에 노출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설탕은 술, 담배, 도박, 마약처럼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아서 상대적으로 단 것을 즐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단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비난받지도 않는다. 비만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존재하지만(이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 것에 대한 선호는 아직 당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설탕 중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설탕 중독을 끊기는 더욱 어렵다.

 

한때, 중세 시기에는 약으로 처방되기도 했고 은과 같은 가치의 사치품 대접을 받던 설탕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마약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 아닐까? 1970년대에 치과의사협회에서 ‘설탕은 아편이다’라는 구호로 설탕 섭취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했다던데, 어쩌면 지금 시기에도 건강한 먹거리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설탕 섭취를 줄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1년여 기간 동안 설탕 섭취를 줄이려고 다각도로 노력하면서 오랜 세월 좋아하던 믹스커피를 끊었고, 에스프레소에도 설탕을 넣지 않고 먹는다. 탄산음료나 과자를 먹을 때가 없지는 않지만 내 돈으로 사 먹는 일은 사라졌고, 체중은 단 것을 줄이고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3-4kg정도 자연스러운 감량이 이루어졌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러닝을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고, 단맛에 구애받지 않고 예전에는 싫어했던 쌉쌀하고 담백한 식재료들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든 설탕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분명히 입맛이 바뀌고, 새로운 미각과 좀 더 건강한 삶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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